본문으로 바로가기
 최동훈 감독은 개성 넘치는 감독이다. 한국에는 많은 감독이 있고 다들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최동훈 감독만큼 개성이 강한 감독은 없다. 그의 개성이란 시나리오 속 대사의 유치함이다. 유치하다는 표현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거나 완성도와 거리가 있다 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실은 그렇지 않다. 유치한 대사를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서 유치한 대사가 명대사가 되기도 한다. 최동훈 감독은 유치한 대사를 아주 능숙하고 그럴듯하게 처리하는 감독이고, 그런 능력이 가장 잘 발휘된 영화가 <타짜>다.

 그의 개성 혹은 장점 중 다른 하나는 줄타기에 능숙하다는 것이다. 뻔하게 진행되는 게 당연한 소재를 뻔하게 진행하면서 뻔하지 않은 진로로 틀어놓는다. 평경장과 아귀, 정마담이 만들어 놓은 놀이터에 고니라는 삐딱한 캐릭터를 던져놓고, 사방을 헤매게 한다. 고수를 탄생시킨 평경장의 최후와 그에 대한 복수심과 죄책감으로 전국을 뒤지고 다니는 고니가 벌이는 행각은 상식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고니가 최후에 아귀와 한판 붙을 것이란 사실을 누구나 알지만, 그런 방식으로 밀고 나갈줄은 몰랐을 것이다. 알고 보니 노름의 세계를 휘저으며 논란을 일으켰던 고니는 물을 흐리는 한 마리의 물고기가 아니라 대한민국 노름판이란 대해를 뒤흔들 어부였다. 그의 낚시 놀이에 노름판 전체가 뒤집어지는 모습을 보며 통쾌한 기분을 느끼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타짜>는 원작의 캐릭터와 그 성향을 가져왔지만, 캐릭터 간에 벌어지는 갈등과 상호관계가 다르다. 모티브는 원작에서 얻어왔으되, 시나리오 자체는 최동훈이 만든 오리지널이라고 보면 된다. 최동훈은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영화를 연출하는 과정에서 원작을 따라 한게 아니라 원작을 자신이 만든 <타짜>의 틀에다 집어넣고 녹여놨다. 원작의 분위기를 풍기면서 동시에 90년대 한국영화가 잔뜩 머금고 있던 필름 누와르 성향도 대놓고 풍겨댄다. 그 지독한 냄새가 위트있는 대사와 예측불허의 스토리와 만나자 이토록 강렬하고 경쾌한 도박놀이로 탄생했다.

 영화는 로맨스도 아주 골때린다. 화란(이수경 분)과 고니(조승우 분)의 로맨스나 세란(김정난 분)과 고광렬(유해진 분)의 로맨스는 일반적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순백 그 자체의 사랑을 말한다. 온갖 꼼수와 배신이 뒤덮여 있는 세상과 그 세상을 담은 <타짜>의 시나리오 속에서 이 순수한 로맨스는 하나의 일탈이자 꽃이다. 대놓고 코믹함을 의도한 세란과 고광렬의 로맨스는 그렇다 쳐도 고니와 화란의 애정행각이 보여주는 신선함이 정말 매력있다. "빚이 얼마야? 내가 다 갚아줄까?" 라고 고니가 물어볼 때 화란이 뭐라고 대답하는 게 일반적일까? 화가 난다면 화를 내고 돌아설 일이고, 마음이 흔들린다면 그걸 표현하면 그만일 터. 하지만 화란은 엉뚱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왜요?" 불쾌하다면 따귀라도 때리는 게 정석일 텐데 그것도 아니고, 그저 "똑같은 놈" 운운하며 나가버리는 화란을 보며 고니만 황당한 게 아니라 감상자도 황당하다. 영화는 시종일관 이런 식으로 감상자의 가슴을 들고 놓는다.


 고니는 벗어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고 그럴 수 없었다. 왜 왔느냐고 묻는 고광렬에게 "돈 따러 왔다" 라고 말하는 순간, 고니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거란 걸 확신할 수 있었고, 그가 죽어도 꽃으로 하는 싸움판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치 다 함께 파멸이라도 할 것처럼 몰아붙이는 노름판의 고수들이 고니의 손아귀에서 놀아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일종의 히어로 영화다. 대한민국 노름판을 대한민국 사회와 현실에 빗댄다면, 고니는 그 대한민국 사회를 절대 외면하지 않고 각종 꼼수까지 부리며 타파하는 히어로나 마찬가지다. 금강불괴에 가까운 생명력이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음에도 큰 문제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최동훈 감독의 화려한 줄타기 덕이기도 하지만, 감상자가 고니라는 캐릭터를 마음속의 히어로로 그려넣었기 때문이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평경장이 고니에게 물었다. "넌 세상이 아름답고 평등하다고 생각하니?" "당연히 그래야 되는 것 아니에요?" 그러자 평경장이 비웃으며 말한다. "썅간나새키, 세상이 아름답고 평등하면, 우린 뭘 먹고 사니?" 이보다 더 확실한 현실은 없다. 그리고 고니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질 때 평등한 세상을 운운하지 않았다고 한다. 

볼링핀과 사람의 머리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단단한지 테스트하는 사람 앞에서도 고니의 일탈은 계속된다.


 <타짜>는 DVD로 발매되고, TV에서 HD로 여러 차례 방송했다. TV에서 방영한 HD방송 화질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타짜> 블루레이가 발매된다는 소식을 들었던 블루레이 유저들은 시큰둥했더란다. 그래서인지 이 좋은 작품의 블루레이가 발매됐는데도 오랫동안 한정판이 소진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못을 박아두겠다. 만약 TV에서 해준 HD방송을 보고, <타짜> 블루레이 한정판을 구입하지 않은 분은 땅을 치며 후회할 것이다. 아예 차원이 다른 화질이다.

 

 일단, 해상력 자체가 아주 탁월하다. 뛰어난 해상력 덕분에 화면의 정보가 가득가득 차있는 느낌이 들고, DNR 처리로 인해 또렷한 선예도를 기대하긴 힘들지만, 환상적인 색감이 감상자를 반겨준다. 장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 색보정의 힘이 블루레이의 높은 화소로 표현되는 순간 '이게 내가 봐왔던 <타짜>가 맞는 거야?' 라는 생각을 떠올려도 이상하지 않다. 그만큼 기존 영상과 차원을 달리하는 화질이라는 소리다. 높은 비트레이트로 안정적인 영상을 디스플레이에 뿌려주는 부분 역시 인상적. 꽉 찬 느낌의 해상력과 높은 비트레이트의 안정감에 아름다운 색감까지. DNR로 인해서 개인적 취향과 거리가 있어도 좋은 화질이란 평을 안 줄 수 없다. 후반부 아귀가 "계속 죽기만 할거여?" 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순간 쉬머현상이 보이는 것 같긴 한데, 의도적인 연출일 가능성이 있어서 단점으로 지적하지 않았다.


 DTS-HD의 음향은 탁월한 서라운드를 자랑한다기보다 디테일한 음향에 집중한다. 풍부한 OST가 높은 다이나믹 레인지를 이용해 강한 몰입감을 주는데, 그 와중에도 조그마한 소리 하나 놓치지 않는 음향의 디테일이 인상적이다. 심지어 그다지 듣고 싶지 않은 페인트 통에 소변보는 소리까지도 DVD보다 한층 더 깊은(-_-) 디테일로 들려줄 정도. 이 훌륭한 음질을 통해서 영화의 풍류(?)가 더 살아나는 느낌이다.

 
 스페셜피처의 내용은 DVD와 동일하다. 코멘터리로 최동훈 감독의 단독 코멘터리와 배우들이 함께한 코멘터리가 수록되어 있다.


 부가영상 중, '만화 VS 영화'는 원작 만화를 영화로 만들면서 바뀐 점을 간략히 소개하고, '만화의 재구성'은 그 각색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이다. 'Making Film Documentary 타짜'는 영상의 제목 그대로 메이킹 다큐멘터리라고 보면 된다.

 '반 사회적 인물에 대한 호기심'은 최동훈 감독의 영화에 단골처럼 자리 잡는 특유의 성향과 사회적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이다. 어둠의 세계와 빛의 세계를 넘나드는 인물과 그 성질에 대해 독특하게 성찰한다. '불나방' 메뉴는 불나방처럼 도박의 세계에 뛰어든 영화 속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에 의해서 설명하는 캐릭터 설명과 소감이다. '타짜들' 영상은 영화에 힘을 불어넣은 스텝들과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한 다큐멘터리이고, '화투와 타짜'는 실제 도박의 세계에 대해서 그리고 그 참혹한 성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상이다.

 'Deleted & Alternate Scene' 메뉴는 최동훈 감독의 코멘터리와 함께하는 삭제-확장 씬이다. 흥미로운 장면이 많으니 필견하시길.

 그 외에 여러 유형의 예고편과 감독과 배우가 말해주는 타짜 속 용어와 수칙 설명인 '별책부록' 메뉴가 포함되어 있다. 예고편 중에 정식 예고편 하나만 HD다.

돈이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날아가서 '화투(꽃의 싸움)' 인가보다.


 <타짜>는 한국에서 19금 영화가 초대박을 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줬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다. 여전히 이 작품은 수없이 회자되며 호평을 받고 있고, 해외에서도 <타짜>에 대해서 호평을 쏟아냈다. 그런 작품이 뛰어난 화질의 블루레이로 발매되고, 그리 많이 팔리지 않았다는 점은 한국 블루레이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일 것이다. 적어도 감상하고 나서 후회할 영화는 아니지 않은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학마 2012.02.26 07:38 신고

    저 타짜 10번은 본 듯합니다. 친구들, 후배들과 얼마나 대사를 따라해댔던지..ㅋㅋ

    필명 바뀌셨네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2. 미주랑 2012.02.26 07:56 신고

    ...어디서 밑장빼기를 하고 있냐..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군요

  3. 베리알 2012.02.26 08:15 신고

    빨리 팔리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잊고 있다가 뒤늦게 구했는데, 잘 나갔었으면 마더처럼 또 없는 초판 찾아 삼만리를 하던가,
    일반판 기다리느라 몇년을 손 빨고 있었을지도 모르니까요. ^^;;;

    진정한 한국형 히어로 영화는 어쩌면 이런 방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4. 2012.02.26 09:08

    비밀댓글입니다

  5. 로즈힐 2012.02.26 09:53 신고

    닉넴을 바꾸셨나보네요....감주님^^
    타짜~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입니다.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

  6. BlogIcon 멀더 2012.02.26 10:22 신고

    요새도 패러디 되더군요 ^^

    오함마 가져와야 쓰것다

    손모가지를 건다 ㅋㅋㅋ

  7. BlogIcon 릿찡 2012.02.26 11:27 신고

    정마담 뒷태로 유명했던 영화 ;;; <<야!

  8. BlogIcon 칼슈레이 2012.02.26 12:00 신고

    하...하악... 즈라더님의 블루레이 포스팅을 보고나니 블루레이로 보고싶어지네요 ㅎㅎ
    그런데... 저희동네 대여점은 다 dvd 밖에없고...게다가 전 블루레이 플레이어도 없고... 구입하기에는 돈이 없는...ㅜㅜ
    보고싶지만 볼수가 없으니 안타깝기만하네요 ^^;;

  9. 스프옹 2012.02.26 12:08 신고

    제가 정말 좋아하는 타짜!!
    '동작그만 밑장빼기냐!!'

  10. BlogIcon Yujin Hwang 2012.02.26 14:10 신고

    감주...라...ㅎㅎ 여자이름 같기도 한데요?
    저는 잠시 다른분인줄 알았죠.^^
    여주인공이 이혜수인 줄 알았는데...
    등장인물 설명에 안나오니 아닌가??

  11. 2012.02.26 15:49

    비밀댓글입니다

  12. BlogIcon 비밀병기 2012.02.26 19:04 신고

    제 유일한 국내 영화 BD네요! 두 말 필요 없죠. 재밌습니다.

  13. smkrainbow 2012.02.26 20:28 신고

    워낙 질리도록 많이 본 영화라..ㅎㅎ
    나온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도 안하고 있었네요..ㅠ

  14. 손님 2012.02.26 22:48 신고

    잘 나온 영화죠
    부가영상도 잘 나온 편이고요

    인물들 중에 아귀 역의 김윤석씨 정말 후덜덜하더군요
    실제로는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다하시던데

    김혜수 누님은 언제봐도 정말 대단하십니다 의젖함(?)이 ^ ^

    닉네임이 감주라..
    조선명탐정때문에 맨처음에는 객주로 봤습니다

  15. 캡틴거북 2012.02.27 01:51 신고

    이번에 소스코드도 지르고 왔습니다.
    집의 컴에도 내장형 블루레이 드라이브를 장착할 계획.
    요즘 무척 싸더군요.
    즈라더님 덕분에.. 아니 감주님 (감주는 좀 포스가 안느껴짐. 차라리 지르다는? 즈라더와 비슷... ㅋㅋ) 저도 블루레이 좀 하게 생겼습니다 이거이거... ㅋㅋ

  16. BlogIcon 양철호 2012.02.27 10:55 신고

    영화도 나름 재미있기는 했지만...
    저에게는 원작 만화의 힘이 너무 강력했었죠.
    타짜. 허영만 최고의 작품 들 중 하나. 워낙 좋은 작품이 많은 분이라서.
    만화가이면서 화백으로 부를 수 있는 분 중 한 분.

  17. BlogIcon (주)CKBcorp., 2012.02.27 18:53 신고

    멋진 영화죠. 리뷰만 봐도 영화 볼 때의 감동이 되살아나는군요.

  18. BlogIcon 푸샵 2012.02.28 13:58 신고

    가끔 따분한 일상과 삶에 대한 지나친 환상이 밀려올 때면 보게 되는 영화 중 하나가 타짜 더군요...저에겐. ^^
    최동훈 감독 작품은 7편 정도를 본 것 같은데.....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스타일을 뽑아내시는 것 같긴해요...ㅎㅎ
    예정작인 도둑들이 무척 기대되네요. ^^

    • BlogIcon 즈라더 2012.02.28 14:33 신고

      헉.. 최동훈 감독의 영화가 7편이나 됐군요.
      왜 그 동안 몰랐지..;;

      저도 도둑들 무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출연진만으로 가슴이 설레이는데
      최동훈 감독이라니!

  19. 거북이달려 2012.02.28 19:55 신고

    법? 아직도 그런 뜨뜻미지근한걸 믿어?...
    라는 아귀의 대사도 있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