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당태종 이세민은 정말 명군이었을까?

category 역사 잡담 2012.10.28 07:00
 한나라가 무너진 뒤 5호 16국의 난이 일어났고, 중국은 편할 날이 없었다. 남북국 시대가 들어서야 조금씩 안정세를 보이고 통일된 뒤에 전반적인 개선이 있었으나 수나라 문제의 아들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와의 전쟁에 온 국력을 다 쏟아 부어 백성이 계속해서 반란을 일으켰고, 그 틈을 타 다시 전국의 군벌이 난립해 나라를 분할했다. 북쪽에선 돌궐이 강성해져 중국을 위협하기까지. 자칫 5호 16국의 악몽이 다시 떠오를 수도 있는 상황이 찾아왔는데, 이 상황을 수습하고 당나라를 건국한 것이 바로 당나라 고조 이연과 그의 아들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다.

 이세민은 후대 유학자들에게 '정관의 치'를 이룩했다고 칭송받는 명군으로 평가 받는다. 천하를 평정하고, 당나라의 전성기를 열어 화려하고 강력한 중국을 다시 세운 인물로 한나라 광무제 등과 함께 중국 역사를 빛낸 인물로 통한다.

 그런데 최근 이 당태종 이세민에 대해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사실은 그가 명군이 아니라는 의견이다.

중국의 군주이니 중국 처자 유역비


 당태종 이세민은 왕에 오르는 과정부터가 순탄치 않았다. 뛰어난 군재로 중국 통일에 공을 세운 그는 계속해서 왕의 자리를 꿈꿨고, 그런 그를 아버지인 당나라 고조 이연과 형제들이 견제하는 건 당연했다. 특히 장자 이건성은 많은 공을 세운 인물이고 첫째 아들이었기에 당나라 두 번째 왕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었는데, 둘째인 이세민을 견제하기 위해 셋째 이원길과 힘을 합쳐 강력한 세력을 갖추었다.

 당나라 고조 이연은 자식들의 분열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특히 둘째 아들 이세민의 야욕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전란이 끝나자 이세민의 세력을 약하게 했다. 군재가 뛰어난 이세민이었기에 전란 중엔 이세민을 약하게 할 수 없었지만, 전란이 마무리되는 상황에서 더는 이세민의 야욕을 봐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세민이 그걸 그냥 보고만 있을 리 없었다. 이세민과 이건성, 이원길의 싸움은 점점 막장으로 흘러갔고, 비록 이세민을 견제하던 이연이었지만 형제들이 반목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어서 세 아들을 모두 궁으로 불러들인다.

 태자 건성과 이원길이 황성의 현무문에 들어서자 이세민은 건성과 원길을 모두 죽이고 3일 뒤엔 아버지 이연으로부터 태자 자리를 강제로 받아냈다. 이연은 이세민이 아버지인 자신마저 죽이려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마 안 있어서 왕의 자리까지 넘겨주었다.

 그렇게 권력욕에 취해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을 탐냈고, 탐내던 것을 가지기 위해 형제를 죽였으며, 아버지를 핍박해서 강제로 왕에 올랐다. 이 사건을 두고 '현무문의 변'이라고 부른다. 정관의 치를 찬송하던 유학자들도 '현무문의 변'이 나오면 입을 다물거나 비판했을 만큼 당태종 이세민이 저지른 패륜이었다.

(* 당나라를 건국한 인물은 훗날 당나라 고조라고 불리는 이연이다. 당나라 태종이 되는 이세민은 이연의 둘째 아들이고, 이세민이 죽인 첫째는 이건성, 셋째는 이원길이었다.)

하지만 유라의 아름다움엔...


 사실, 많은 사람이 찬양하고, 이세민을 명군으로 부르게 한 '정관의 치'는 '자칭'에 가까웠다. 현무문의 변으로 왕이 된 이세민은 계속해서 자신이 굉장히 뛰어난 인물이라고 외쳤고, 자신의 치세는 나라를 부강하게 한 위대한 시대였다고 말했다. 이 정관의 치세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이세민이 했던 것은 수나라 문제(고구려를 113만 대군으로 침범한 수나라 양제의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행정제도를 그대로 쫓았을 뿐이라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는데, 수나라 문제가 만든 행정 제도가 실제로 당나라 제도의 기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수나라 문제는 통일된 중국을 뒤엎어 정치적 개편을 단행했고, 긴 시간 분열되어 엉망진창이었던 귀족들의 위계서열을 정리했으며, 호족의 힘을 억제하고 그 호족과 연결된 문벌귀족을 억눌러 중앙의 힘을 강화했다. 부병제, 의창제, 균전제, 조용조 제도까지 수나라 문제가 해낸 일은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 해낸 일을 '압도' 한다. 수나라 문제의 치세를 두고 '개황의 치'라고 부른다.

 이렇게 수나라 문제의 놀라운 국가 시스템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약간의 발전을 도모한 게 이세민의 업적인데, 이걸 두고 과연 위대한 군주라고 부를 자격이 되느냐는 게 일부 역사학자들의 의견이다. 그리고 이세민 자신 역시 자신이 해낸 것들이 사실은 수나라 문제의 것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신하와의 대화에서 수문제를 억지로 비판했다.

 "고아와 과부를 속이고 천하를 차지했으며, 신하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을까 두려워 크고 작은 일을 전부 직접 처리했으니 나라를 발전시킬 인물은 아니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최고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는 방은영.. 제발 은퇴하지 말고 쭉 있어주길. 혹시 사진에 문제가 있을 시 리플로 꼭 남겨주세요.


 현무문의 변으로 형제를 죽이고 왕이 된 이세민이 수문제에게 고아와 과부를 속여 천하를 차지했다는 비판을 하는 게 얼마나 웃긴 일인가 싶다. 또한, 크고 작은 일을 직접 처리했는데도 개황의 치라 불리는 훌륭한 정치를 했다는 사실로 수문제가 천재라고 자신도 모르게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직접 처리했다.'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 가진 장점이 바로 훌륭한 신료 집단이고, 이세민은 이들을 적극 활용해서 정치했기 때문이다. 그의 치세를 '정관의 치'라고 부르며 칭송하는 것은 이세민이 자기 독단으로 움직이지 않고, 뛰어난 신료 집단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세민은 군재가 뛰어났다. 그가 만든 전술 시스템은 과연 천하를 호령했다고 할 만하다. 즉, 이세민은 뛰어난 신료 집단의 정치를 바탕으로 수나라 문제가 남긴 유산을 활용해서 나라를 다스렸고, 자신의 군사적 능력을 활용해 주변 국가들을 멸망시켰기 때문에 위대한 군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사실 굉장히 우스운 일이다. 뭐가 어쨌든 주변 국가들을 멸망시킨 것은 전쟁을 통해 이룬 것이고, 이는 유학의 입장에서 '상스러운 것'에 해당한다. 그가 가진 탁월한 능력이라곤 군재 뿐인데, 그 능력만을 유학자들의 찬양을 받았다면 코미디다. 게다가 신료 집단을 이용해 훌륭한 정치를 한 것도 정상적이라 볼 수 없다. 이는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다.

 무엇보다 이세민은 돌궐 토벌과 고창국 토벌 등 주변국들을 상당수 무너트리는 데 성공했으나 결국, 고구려 정벌에 실패했다. 그냥 실패한 정도가 아니라 큰 패배를 당했고, 그게 굴욕적이었는지 고구려 정벌에 전력투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지나친 국력 소모를 걱정한 신하들의 간언에 시달리기도 한데다 나중에 가선 반란이 일어나는 등 백성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이세민 자신의 능력은 오로지 '군사적 재능' 하나 뿐이었는데, 그게 무너지니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고 만 것이다. 이런 것을 비롯해 그가 수양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의 인물이었던 게 여러 측면에서 드러난다.


 위징이란 인물이 있었다. 이세민의 치세에 큰 힘을 보탠 인물인데, 그는 '간언의 달인'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칭찬할 것은 칭찬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인물이었다고 보는 게 옳다. 그는 이세민이 시행한 정책에 대해 칭찬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남겼다. 

 이세민은 자신의 치적이 정말 위대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진시황과 한무제 등 뛰어난 창업자가 그랬던 것처럼 봉선 의식을 거행하려 했는데, 위징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대했다. 이세민은 자신의 치세가 이토록 훌륭한데 어째서 반대하느냐고 물었고, 위징은 이세민의 치세가 과장되었음을 구체적으로 꼬집어 비판한 뒤 나라의 국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라고 간언한다. 위징의 생각에 봉선 의식은 쓸모없는 허세에 불과한 행사인데다 설사 필요한 행사라 하더라도 이세민이 치를 수 있는 행사가 아니라고 여겼던 셈이다.

 위징은 이런 간언을 수없이 했는데, 이세민은 위징을 정말 싫어하게 되었다. 그래서 침전으로 돌아와 황후의 면전에 대고 이렇게 말한다. 

 "내가 저 시골뜨기를 죽여버리고 말겠소."

 그러자 황후는 정복으로 갈아입고 나와서 이세민에게 절을 했다. 이세민이 왜 그러는지 궁금해하자 이렇게 답한다.

 "위징을 죽이고 수나라 양제처럼 온갖 쾌락을 다 누리며 살 수 있게 되셨으니 기뻐 축하드리는 것입니다."

 이세민은 폭군인 수나라 양제처럼 될 것이란 황후의 풍자에 당황하며 위징을 죽이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일화는 누가 봐도 이세민의 치졸한 일면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를 보고 주변의 진언을 잘 듣는 이세민으로 평가하는 일이 잦다. 특히 유학자들이 그러했는데, 잘 알고 보면 이건 이세민이 진언을 잘 알아듣는 게 아니라 신권이 너무 강력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어준 것에 가깝다. 위 일화의 황후는 그 유명한 장손황후다. 현명하고 지아비를 잘 보필하는 최고의 부인으로 추앙받는 인물이고, 이것은 부정할 여지가 전혀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의 배경이다.

 
 장손황후는 이세민의 신료 가운데에서도 아주 강력했던 장손무기의 동생이다. 즉, 장손황후는 오라버니의 힘을 등에 업고 이세민을 비판했던 것이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세민과 신료 집단의 인간관계가 이세민을 이끌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예인 셈이다. 장손황후는 정말 현명한 인물이다. 심지어 이세민보다 더 현명한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멋진 일화들이 잔뜩 있어서 정관의 치는 장손황후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다란 농담까지 나오곤 했다. 그런데 만약 그녀가 현명한 부인이 아니라 한나라 고조 유방의 황후인 여후같은 인물이었다면 어땠을까? 이와 같은 사례를 모든 신료에게 적용할 수 있다. 만약, 이세민을 이끌었던 신료 집단이 뛰어난 인재들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그 신료 집단을 발탁한 이세민이 대단하다면 대단하지만, 그 신료들은 이세민 휘하의 신료들만 있던 게 아니다. 아버지인 당나라 고조 이연을 따르던 인재들과 자신이 죽인 이건성, 이원길을 따르던 인재들도 있었다. 그들을 상대로 다시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모두 자신의 사람으로 억지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고, 그로 말미암아 신권이 강력해진 것이다.

 심지어 이런 일까지 있었다. 이세민의 첫 번째 태자인 이승건이 여러 문제를 일으키자 태자 자리를 내놓게 했는데, 조정 전체가 술렁였다. 역모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 그리고 이승건을 대신해서 자신이 총애하던 이태를 태자로 앉히려 했지만, 장손무기를 필두로 한 신료 집단이 결사반대했고, 장손무기가 추천한 이치를 태자로 삼고 만다. 이태를 끝까지 태자로 삼고 싶었던 이세민은 자살하겠다며 신료들을 협박했지만, 이조차 먹히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태를 태자로 삼고 장손무기의 힘을 억누르려 자살 협박이란 황당한 촌극을 벌였음에도 다시 장손무기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왕자인 이각을 태자로 앉히려고 했지만, 다시 장손무기에게 막혀서 실패한다. 장손무기가 이치가 아니면 태자로 삼을 수 없다고 이세민의 의견을 아예 무시해버린 것은 당시 신권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게다가 명분까지 장손무기에게 있었다. 장손황후의 태생인 이치가 태자 자리에 오르는 것은 논리적으로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결국, 연이은 굴욕에 큰 상처를 입은 이세민은 고구려 정벌에 사활을 걸었다. 그리고 처참하게 패배하면서 마지막까지 자존심을 구기고 국력을 잔뜩 소모해 '훌륭한 업적'과 한참 거리가 있는 치세를 끝내고 만다. 

그래서... <헌원검지천지흔>은 언제 서비스하나요? ㅠㅠ


 마지막으로 이세민이 명군일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를 말해본다. 그는 자신의 기록을 수정했다.

 본래 왕은 기록을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이것은 그 어떤 제왕도 어겨선 안 되는 기본이다. 기록되어선 안 되는 뭔가가 있다면, 자신의 기록을 보는 게 아니라 사관을 쫓아내는 방식을 택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그는 협박을 통해 자신의 기록을 살펴봤고, 방현령으로 하여금 기록을 수정하게 지시했다. 결국, 방현령은 20권의 실록을 다시 지어서 올려야 했다. 기록을 없앤다면 모를까 다시 지어서 올리다니 유례없는 막장이다. 당태종 이세민이 저지른 수많은 악행 가운데 최악이라 봐야 한다. 역사는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의 기록을 자기 마음에 들도록 수정해버린다면, 그것에서 실제 역사를 찾는 것이 '추리'의 영역이 되어 버린다.

 이세민의 기록 수정은 사실이 아닐 것이란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대당창업기거주>라는 사료를 살펴본 결과 <구당서>나 <신당서>, <자치통감>과 같은 기록과 꽤 다르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최소한 당나라가 건국되기 직전과 건국된 직후의 기록이 이세민의 입맛에 맞게 수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란 말인가.

 유사역사학자들이 고구려와 당나라의 전쟁을 잔뜩 부풀려서 고구려가 하북을 점령했느니 중국의 동쪽 변방 전체를 점령했느니 하는 황당한 주장을 하는 것도 다 이세민이 기록을 수정한 것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유사역사학자들은 수정된 기록에도 이세민의 기행이나 멍청한 짓이 상당히 적혀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이세민 치세의 기록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중이다. 기록 수정의 위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뭐든지 믿을 수 없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세민처럼 기록을 수정하고 싶어한 사람이 있었다.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가 바로 그 사람인데, 그는 이세민의 전례를 본받아 자신의 기록을 살펴보길 원했다. 신하들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되었지만, 이성계가 이런 무모한 시도를 하려 한 것도 명군으로 인정받는 이세민이 기록을 살펴보고 수정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세민은 후대에 최악의 불량 유산을 남긴 셈이다. 

 글쓴이는 이런 사람을 명군이라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가 저지른 실패들을 모조리 다 무시하고, 모두 다 이세민의 공이라 쳐도 '기록 수정' 이란 것 하나만으로 이미 그는 명군이 될 수 없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2012.10.28 08:03

    비밀댓글입니다

  2. 베리알 2012.10.28 08:17 신고

    아, 유라짱! 유라짱! T T

  3. 베리알 2012.10.28 08:20 신고

    이런 게 참 역사를 보는 재미인 것 같습니다.
    같은 사건을 놓고도 문자 그대로 보느냐,
    또는 가르치는대로 그저 받아 들이고 마느냐,
    앞뒤 사정이나 전후 관계를 파악해서 진짜 의미를 찾아 보느냐 등등...

    이게 역사일 때는 재미긴 하겠습니다만, 현대사로 오면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게 흐음.
    천하의 개XX라고 불러도 모자랄 악당이 한쪽에선 국부라고 추앙받고,
    누가 봐도 개잡스러운 범죄이자 반역일 뿐인데, 한쪽에선 구국의 결단이네 뭐네 하면서 핥아대고...

    • BlogIcon 즈라더 2012.10.28 14:38 신고

      현대에 와서 이세민을 쫓는다면, 그건 재앙 그 자체겠지요..ㄷㄷ
      솔직히 이세민의 치세가 백성들에게 행복한 시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은.... 생략합니다. ㅠㅠ

  4. BlogIcon 나비오 2012.10.28 11:26 신고

    역사는 그 시대에 씌여지는 것이 아니라 현 시대의 힘의 균형에 의해 평가되는 것 같습니다.
    이세민, 한국 사극에서 볼때는 멍청한 야욕 덩어리로 밖에 안 보였죠 ㅋㅋ

  5. BlogIcon 릿찡 2012.10.28 13:18 신고

    뭐랄까 운칠기삼이라고 하여 꼭 훌룡한 사람만이 업적을 남기는건 아니지요. 하지만 이세민은 최소한 업적을 남길 자질. 즉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닥돌하는 (좆망의 자질이기도 하다만) 자질만큼은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고 봅니다. 뭐 사실 저런식의 돌격형의 군주는 중국에서는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게 대부분 이지만요. (조조라던지 ...)

  6. BlogIcon RGM-79 2012.10.28 16:10 신고

    개인적으로 아주 싫어하는 사람(아니 벌레)지만 그의 역량이나 업적을 생각하면 중국 입장에서 명군이 맞습니다.
    저것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도 망친 황제가 더 많고
    수문제와 비교는 많이 틀립니다.
    수문제는 선양을 통한 국가 통째로 얻어내기였지만
    당은 전쟁으로 재통일 한 겁니다. 아직도 어수선한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제도나 인적 자원이야 수나라 것이 많지만
    그걸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서 저 정도면 정관의 치라고 자뻑할만 합니다.
    저시대 앞 뒤로 멀쩡한 군주를 찾는 게 더 어렵습니다.

    위징 일화야 저당시 황제들뿐만 아니라 북조에 기반한 사람들도 유목문화에 발을 걸치고 있었고
    (그래서 아버지 부인 건드리기가 흔한 이유;;;)
    자칭 순순 한족의 남조도 개막장의 시댑니다.(과격하지 않은 이 찾는 게 힘들 정도로)

    사료부분이야 까일만 하지만 그것도 후대기준이지 저 당시의 기준으로 따졌을 때
    당 태종이 선방을 넘어 잘한 군주라는 것은 틀리지 않습니다.
    수문제 깐 거나 고구려 깐 거나 도찐개찐이지만 높으신 분들의 고금 막론한 종특이구요.

    • BlogIcon 즈라더 2012.10.28 17:13 신고

      당대 캐막장 군주들의 행렬을 보면 그럴 법 하지요.
      하지만 당태종이 강희대제나 한무제, 광무제같은 인물과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는 인물은 절대 아니란 의미..^^;;

      개인적으로 당태종은 신료 집단이 병맛이었으면, 나라 제대로
      말아먹었을 인물이라 여깁니다.

      군사적 재능이 뛰어난 것은 수양제도 마찬가지였으니..

  7. 황엽 2012.10.28 19:18 신고

    장손무기의 도움으로 현무문에서 용상에 도전하던 경쟁자들, 그러니까 자기 형제들을 죽였군요.
    천명에 의지(보단 빙자)해서 용들을 베었으니 의천도룡인가요? 금모사왕과 명교교주도 생각납니다.
    현무가 북방을 관장하는 신수이니 결국 고구려를 정벌하다 개피를 본 건 일종의 신벌일까요?

    동북아가 공정하다고 믿는 짱개들은 고구려의 장성도 진머시기가 만든 만리장성의 일부라고 하던데,
    지들이 최강의 군신중 하나라고 자부하는 패왕이 지은지 수백년이 된 성 하나를 못뚫어 ㅄ이 됐네요.
    결국 정관의 치도 위사이니 징한데다, 사초에 손을 댔다면 이세민은 이름처럼 혹세무민의 원조인 셈.

    뻥쟁이를 자랑삼는 뻥쟁이들의 본색에 실소만 납니다. 암튼 좋은 글 잘 보고 가네요.

    • BlogIcon 즈라더 2012.10.28 22:47 신고

      올림픽을 보고 짱개들이 하는 말... 우리나라 것도 다 중국 것으로
      포함해야 하는 것 아니냐... 라고..

      이런 히발..

  8. 손님 2012.10.28 22:10 신고

    다른 것은 몰라도 역사의 기록을 함부로 손을 대고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기본이 안된 군주는 분명하군요

    조선에서도 그런 경우는 있었지만 연산군 외에는
    다른 왕은 본적이 없고 대신과 사관들이 결사 반대했는데 말이죠

    헌원검지천지흔 국내방송은 7월달에 방영예정이라 했는데
    무기한 연기된 거로 알고 있습니다 기약이 없다는...

    그나저나 유라 사진보니 유역비가 평범해 보이는군요

  9. 벼리 2012.10.28 22:26 신고

    언젠가 어떤 포스팅의 뎃글에 오늘글은 무척 짧으네요, 한 것을 봤는데
    오늘글은 무척 기네요, 읽다가앍다가 그만,,,,나중에 조금은 뛰어 넘었어요,,,,ㅠㅠ
    암튼, 기록을 지우고 바꾼 왕이라니 참 기가 막히네요.
    그걸 본이라고 이성계는 또 따라 할려고까지,,,ㅎㅎ,,,못된 것은 금방 배운다는,,,
    역사는 정말로 지루하기는 하지만 재미도 있어요 분명히...참 잼나게 읽었어요..^^

  10. 당나라 태종이라고 하면 중학교때부터 귀에 익도록 단순히 명군이다. 중국의 역대 황제들중 최고의 성군이다.
    이런식으로 들어와서 조금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역사란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봐야하는것이지요 ㅎㅎ

  11. BlogIcon 붉은비 2012.10.29 08:31 신고

    원래 군주는 유능하냐 아니냐의 판단으로 충분하겠죠.
    명군이니 성군이니 따지는 것은 결국 지도자가 완전무결하길 바라는 민심이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시니컬한가요?^^;)
    여튼 오랜 세월 당태종이 명군이란 이야기를 들어온 것만으로도 그가 최소한 유능한 군주이기는 했다는 반증이겠죠. ㅎㅎ

    뭐 개인적으로는 중국 역사상(상고시대 제외하고) '명군'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사람은 광무제와 강희제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두 사람이야말로 군주계의 먼치킨...

  12. BlogIcon 사과랑 2012.10.29 10:56 신고

    제가 생각한거랑 비슷하군요. 제가 생각해도 이세민이 딱히 뛰어난 왕이란 생각을 안해요. 그저 시기적으로 운이 좋은 인물이었을 뿐.
    이연이 안정화하기 전에 이세민이 왕위를 가지게 되었고, 주변인들과 이전 수나라의 업적 덕분에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좀 더 보충할 수 있는 글이었네요.
    그나저나...고구려...참 대단해요.ㅋㅋ

    • BlogIcon 즈라더 2012.10.29 12:34 신고

      좋게 봐줄래야 이놈 자뻑에는 답이 없는 겁니다. ㅋㅋㅋ

      수양제에 당태종같은 전쟁광을 막은 고구려의 신기...
      그러나 내분으로 좌절..

  13. BlogIcon 하 누리 2012.10.29 13:09 신고

    머리가 짧아졌는데도 매력이 넘치네요..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
    한주도 힘내세요 ^^

  14. BlogIcon 청해용왕 2012.10.29 21:39 신고

    기록 수정내지 열람을 하려고 했던 군주들은 계속 나오죠. 조선에서는 그걸 신하들이 막았지만.. 중국은 뭐..

    이세민의 경우에는 공과 과가 많기는 하지만 여하튼 나라 초반을 안정(군사력으로 찍어 눌렀다고 해도..)시켜 왕조를 이어가는데 기여했다는 점에서는 인정해 줄만은 합니다. 현무문의 변 같은 경우에도 물론 패륜이지만 죽지 않으면 죽게 되는 권력 쟁탈의 현장에서 불가피(혹은 권력욕에 따르는)한 행동을 한 것으로도 볼 수 있죠. 고우영 만화 같은걸 보면 이세민은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형제를 살해하는 식으로 나오죠. ㅡㅡ;;.. 어차피 이긴놈 위주로 역사를 적게 되는건 동서고금이 따로 없으니..뭐~

    고구려 정벌의 경우도 중국입장에서는 천하의 최강자를 정하기 위한 치킨게임 일 수 있습니다. 하늘에 태양이 두개 있을 수 없다는 그런 식의 논리... 결국 규모의 전쟁에서 밀리는 고구려가 지는건 필연이었을지도요. ㅡㅡ.. 조금만 더 버텼으면 말그래도 "당나라 군대"가 되버린 당나라를 능욕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쩝.. 그때 당나라 군대는 꽤나 강해서...

    • BlogIcon 즈라더 2012.10.29 22:12 신고

      인정해줄 부분은 말씀하신 부분, 딱 거기까지라는 게 함정..ㅋㅋ

      당나라 군대는 무지막지하게 강했지요..
      다만 그게 두 세대를 못 넘기더군요. 으헐헐..

  15. 조이피트 2013.03.31 22:29 신고

    우와..몰랐던 사실이군요,,

  16. 이세민 2013.04.18 10:43 신고

    MBC(문화방송)에서
    안시성전투라는역사드라마
    를방영한다면?당태종(이세민)
    역할에 이사람이 어울리지
    않을까싶다!
    박영규(후보1)임채무(후보2)
    길용우(후보3)이덕화(후보4)
    최상훈(후보5)장항선(후보6)
    임혁(후보7)

  17. 아는남자 2014.03.23 19:18 신고

    너무 한 쪽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쓴 글이 아닐까 합니다.
    먼저, 아버지를 몰아내고 형제를 죽이고 왕이 된 부분에서는 따지고 보자면 이세민의 군재로 인해 세워진 나라인데 당연히 자신이 황제가 되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다보니 발생한 일 이라고 생각됩니다.
    둘째로 위징의 경우 이세민은 항상 위징을 신임합니다. 목숨을 내놓고 조언을 하는 신하임을 알기 때문이죠. 그래서 황후에게 자기가 혹시 위징을 죽이려하거든 말려달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셋째로 고구려 원정의 경우, 당태종이 물론 고구려 원정을 실패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당태종의 지속적인 고구려 말살 정책에 결국 당태종 사수애 국력이 쇠하여서 망하고 말죠.
    덧붙이자면 당태종이 죽으면서 유언으로 절대 고구려원정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일화로 미루어 봤을 때 무모하게 정벌에만 얽매였던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핸드폰으로 쓰느라 힘드네요 오래된 글이지만 제 의견이랑은 많이 다른 것 같아서 댓글남깁니다.
    좋은하루되세요

    • BlogIcon 즈라더 2014.03.24 15:31 신고

      유언으로 고구려 원정을 하지 말라고 했다는 건 기록에 없습니다.

    • ???? 2014.03.25 00:57 신고

      기록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그러면 기록에 의해서 글을 쓰셔야죠
      이세민은 군재만 뛰어낫던 것이 아니라 직접 집필한 책도 있고 명필이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또한 고구려 전쟁에서 대패했다고 보기에는 크게 무리가 있지않나 싶습니다만?

  18. 말이없네 2014.06.11 00:24 신고

    할말을잃으셨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