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팔만대잡담

2012 한국영화, 특히 빛났던 작품 다섯 편 본문

홈 비디오와 영화 잡담/영화 잡담

2012 한국영화, 특히 빛났던 작품 다섯 편

즈라더 2012.12.31 07:00

 이미 상반기 영화계를 간단히 정리할 때 말한 것처럼 올해 한국 영화계는 이상했습니다. 다른 해 같으면 한 해를 대표하는 영화로 꼽힐만한 작품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거든요. 그간 주목받지 못하고 한국 영화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던 실력파 감독들이 본격적인 투자를 받고 제대로 오락 영화를 만들기 시작해서 이런 기현상이 일어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의 윤종빈 감독과 <건축학개론>의 이용주 감독, <광해>의 추창민 감독이 그런 감독입니다. 윤종빈 감독은 <비스티 보이즈>, 이용주 감독은 <불신지옥>을 통해 인상을 남겼고, 두 작품은 개성이 확실하게 살아 있어서 영화 애호가들에겐 꽤 유명한 상황이었거든요. 긴 시간 여러 영화로 주목받았으나 네임밸류를 얻지 못했던 추창민 감독은 <광해>를 통해 메가히트를 쳤고요.


 항상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 박찬욱 등 이미 명성을 날린 지 오래된 감독들만 주목받는 한국 영화계가 좀 안타까웠는데, 2012년을 통해 새롭게 주목받는 감독이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가장 빛났던 한국 영화를 뽑아보렵니다.


 <범죄와의 전쟁>은 어쩌면 올해 최고의 영화일 지도 모릅니다. 한국형 느와르의 시작이랄까요. 다른 나라와 완전히 다른 역사를 가진 한국 범죄인데도 다른 나라의 느와르/갱스터 영화 컨셉을 빌려서 한국 느와르를 만드는 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제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달라질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만듦새 좋고, 캐릭터 좋고, 이야기 좋으니 아마 많은 분이 이 영화에 푹 빠져들었을 겁니다. 올해 초 개봉한 영화임에도 지금까지 잊을 수 없군요. 정말 강력한 영화에요.

 

 <건축학개론>은 첫 사랑이란 테마에 있어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아주 깔끔하게 풀어낸 역작입니다. 현재와 과거의 대비, 9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배경, 첫사랑의 오해와 격정, 공포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아주 기쁘고 행복했지만, 또한 두렵고 아팠던 첫 사랑을 조금도 과장되지 않게 연출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제 첫 사랑이 떠올라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어찌나 아프던지. 

 혹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최루성 멜로라고 여길 수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으니 걱정 마시길. 
 


 <도둑들>은 엄밀하게 말해서 아주 잘 짜인 영화로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다소 모호한 구석이 없잖아 있었죠. 많은 분이 1000만 관객이 들 영화는 아니라고 평가하는데, 그 이유도 잘 짜인 영화가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경쾌하면서 묵직한 느낌의 최동훈 스타일이 아주 잘 살아 있는 영화입니다. 캐릭터도 생생히 살아 있고요. 워낙 많은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다 보니 걱정 많이 했는데,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잘 떠올려 보면 <범죄의 재구성>부터 <전우치>에 이르기까지 최동훈의 장기는 캐릭터와 대사, 중의적 스토리였거든요. 최동훈은 톱스타가 여럿 나와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감독이었습니다.


 <광해>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이야기를 뻔한 구조로 담은 영화입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강점이었어요. 뻔했기 때문에 더 많은 대중이 접근할 수 있었달까요. 지나치게 복잡한 구조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히 호평을 얻었지요. 

 저 개인적으론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빛, 세트 등의 비주얼 요소와 배우의 연기, 적절히 반영한 시대상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뜻밖에 꼼꼼했던 구성 요소도 참 좋았지요. 우리나라 사극의 이상적인 존재랄까요. 앞으로 사극은 이렇게 찍도록 해야 해요. 뻔한 스토리를 답습하라는 게 아니라 시대상 반영과 세트장, 미술 등에 더 신경 쓰라는 의미입니다.


 <화차>를 보고 전 신용카드 재발급을 중지했었습니다. 당시 외국 쇼핑몰 이용이 늘어나면서 신용카드를 재발급하려 했었거든요. 체크카드로 아마존이나 예스 아시아 같은 사이트를 이용하는 건 상당히 스트레스받는 일인지라 신용카드 재발급 직전까지 갔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한숨 쉬며 포기했지요. 대출, 신용등급 등과 같이 뭔가 복잡해진 현대의 금융이 만든 끔찍한 내면을 세상의 <화차>가 제대로 담았습니다. 원작 소설이 일본 소설이라서 걱정했는데, 한국의 상황에 맞게 잘 리메이크했더군요. 한 번 감상하실 필요가 있는 영화입니다.

 본래 <화차>가 아니라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넣으려고 했습니다만, 제가 임수정에 빠진 건지 영화에 빠진 건지 모호해서 제외했습니다. '더티 섹시'의 레퍼런스로 등극한 류승룡의 모습도 인상 깊었지만 역시 임수정이 참 사랑스럽더군요. 코미디 영화 하나 넣을 필요가 있지 않았나 싶어서 조금 고민했네요.


 뜻밖의 이야기겠지만, 올해는 독립 영화, 저예산 영화가 특히 주목받은 해이기도 했습니다. 대기업의 상영관 독식 등으로 말이 많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저예산 영화가 주목받아 자기 목소리를 냈어요. 상영관 독식은 올해만 있었던 게 아니므로 제쳐두고, 이런 현상의 진짜 원인은 다운로드 시장의 파이가 커지면서 작은 영화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봐야죠. 내년엔 다운로드 시장이 더 커져서 더 다양한 영화를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 


 2012년의 한국 영화는 정말 다섯 작품만 고른다는 게 말도 안 될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은교>도 있었고, <피에타>, <후궁>도 있었지요. 생각하면 할수록 참 신기한 1년이었어요.


뱀다리) 올해 마지막 날 즐겁게 보내시길..:-)



신고

61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