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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독한 감기에 걸린 마냥 한국 축구계가 흔들리고 있다. 부진해서가 아니다. 언제나 급하게 전시행정만 거듭하는 축구 협회와 국가대표 경기만 보고 욕하기 바쁜 일부 축구팬들 탓이다. 비판은 합당하지만, '비난'은 합당치 않다. 최강희 감독이나 국가대표 선수 모두 수백 경기에 걸쳐 능력을 검증받은 인재들로 그들이 제대로 뭉쳐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며 '비판'한다면 모를까 '실력이 아예 없는 감독', '실력이 아예 없는 선수'라며 비웃고 욕하는 모습에 기가 막힌다. 선수가 1년에 50 경기를 치른다고 할 때 국가대표 경기는 몇 경기나 될까? 그 얼마 되지도 않는 국가대표 경기만 보고 어떤 선수의 '실력'을 판단했다는 것에서 비웃음이 차오른다.

 뭉치지 못했을 뿐이다. 자신을 '클럽형 감독'이라 말하긴 했어도 최강희 감독은 역대 국내파 국가대표 감독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결과물을 보여 온 사람이라 평가받을 정도로 K리그와 아시아를 호령한 감독이다. 대표팀에 불려 온 선수들 역시 K리그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훌륭한 실력을 보여온 (아시아 최고의) 선수들이다. 그런 그들이 제대로 뭉치지 못했다고 '원래 실력이 없는 바보'로 취급한다는 것에서 일부 축구팬의 '수준'이 눈에 훤히 보인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억지와 황당한 루머, 논리라곤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비난이 난무하던 커뮤니티에 희소식이 전해졌다. 박지성 선수가 열애 중이고, 결혼도 예정되어 있다는 소식. 지저분하게 썩어가던 축구 관련 커뮤니티와 일반 커뮤니티에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글쓴이 역시 두 사람이 데이트하는 사진을 보니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들더라. 조금 더 기쁠 수 있을 사진은 없나 싶어서 김민지 아나운서 사진을 뒤지고 다녔을 정도. 참 예쁘고 귀여운 게 박지성과 천생연분이란 생각이다. 

 그러나 이 행복한 기분마저 금세 사라져버렸다.

 스포츠 선수의 부인은 희생을 기본으로 한다. 특히 외국에서 활동하는 스포츠 선수의 아내라면, 자신이 하던 일을 아예 포기해야 한다. 따라서 김민지 아나운서가 박지성의 내조에 집중하고 쫓을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 것을 보고 고마워했었다. 김민지가 정말 박지성을 사랑하는구나. 희생하는구나. 그런데 이건 글쓴이만의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관련 기사의 댓글이나 커뮤니티의 반응이 예상과 아예 달랐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이 얼마나 될까? 당연하다는 표현은 '원래 그렇다'라는 표현과 어느 정도 일치하며, 근거 또한 비슷하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은 당연하다'와 같이 '이치'에 가까울 때 바로 '당연'이란 표현이 나온다. 김민지 아나운서가 박지성 선수 내조에 힘을 다하는 것은 '이치'가 아니므로 '당연한 것'과 거리가 한참 있음에도 많은 사람이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었다. "왜 그 당연한 걸 생색내며 밝히느냐?" 라는 글에선 아예 헛웃음이 다 나오더라.

 박지성이 훌륭한 선수임은 틀림없으나 그 재능과 성공으로 김민지 아나운서의 꿈을 덮어도 된다는 법은 없다. 김민지 아나운서 역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아나운서가 되었고, 꿈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투자해 온 훌륭한 여성이다. 박지성처럼 재능으로 범세계적 인기를 누리긴커녕 아직 대중도 잘 모르는 신인 아나운서에 불과하지만, 꿈과 노력엔 귀천이 없는 법. 겨우 85년생 29살에 불과한 여성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꿈을 잠시나마 포기하고 희생하겠노라 다짐한 것인데 어떻게 '당연한 것'이 될 수 있는가. 애초에 외국에서 활동하는 스포츠 선수의 아내가 무조건 끌려다녀야 한다는 '개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반대로 김민지 아나운서를 사랑하는 박지성이 한국으로 올 수도 있는 법이다. 박지성은 이제 외국에서 뛸 만큼 뛰었으므로 K리그 역시 박지성이 뛸 수 있는 리그임이 틀림없다. 빅리그에 머물러주면 (여러 가지 이유로) 좋겠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는 법 역시 없다. 박지성이 K리그에서 뛰면 김민지 아나운서 역시 자신의 꿈을 완전히 버리지 않아도 될 일이다. (권장하진 않는다. 박지성이 김민지 아나운서를 배려해서 K리그로 온다면, 그 순간부터 김민지 아나운서는 1000만 안티와 대적해야 할 테니까.)

 물론, 글쓴이가 진짜로 박지성이 K리그에서 뛰고 김민지가 아나운서 일을 계속하길 바라는 건 아니다. 박지성의 팬으로서 계속 빅리그(이번엔 라리가도 한 번!)에 남아 있길 바란다. 그저 김민지 아나운서가 박지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고 고마움을 느꼈고, 박지성의 팬이라면 누구나 이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고 여길 따름이다. 박지성이 사랑하는 여자가 그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인 거니까. 김민지 아니어도 박지성 좋다는 여자 많다고 말한다면, 인간관계의 개념을 모른다고 자박하는 것이니 하지 말자. 박지성 좋다는 여자 가운데 박지성이 사랑하는 여자가 그를 위해 희생하리란 법은 없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매우 드물다. 특히 남녀 관계, 혹은 결혼에선 아예 없다. 있다고 여긴다면 자신이 고정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시라.


- 조금 더 적어보기 


 사실, 김민지 아나운서가 박지성이 가는 곳으로 함께하더라도 기성용과 결혼하는 한혜진보단 훨씬 낫다. 박지성은 이제 33살의 노장으로 현역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선수니까. 어쩌면 박지성과 김민지가 그걸 고려해서 결론을 내린 것일 수도 있다. 박지성이 외국에서 축구 공부를 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김민지 아나운서가 금방 복귀할 가능성이 분명히 있고, 따라서 김민지 아나운서 팬들은 한혜진 팬들보단 충격이 덜한 모양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노지 2013.06.20 07:15 신고

    뭐, 결혼이란건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ㅎ;

  2. BlogIcon 포장지기 2013.06.20 07:32 신고

    앞으로 다가올 생활의 불편함.... 걱정이 되기는 합니다..

  3. 베리알 2013.06.20 07:39 신고

    날이 갈수록 그냥 무관심해 지는 게 답인가 싶어지지 말입니다.

    남의 희생 위에서 탱자탱자 살아온 사람들이나,
    나도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라...라는 심보로 살아온 사람들.
    소름 끼치는 세상입니다.

    • BlogIcon 즈라더 2013.06.20 16:45 신고

      꿈을 포기하는 희생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어려운 꿈을 이룬 사람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왜 이해하지 않을까요.

  4. widow7 2013.06.20 16:37 신고

    나는 국대가, 월드컵이 걱정되는데 연애에 바쁜 지성이는 국대에 관심이 없구나.....지성이 킨즈파 벗어나 어딜 가나 관심이 많았는데 지성이는 까짓거 은퇴한다는 기분인 거 같아 아쉽구나.....고대범벅 축협이 명보 찍어놓고 언론플레이하는데, 어차피 될 거 명보가 감독되고 지성이 주장되어, 지단이 마지막을 불태운 것처럼 지성도 마지막을 월드컵으로 불태웠으면 좋겠건만.....지성이 그네랑 결혼한다 해도 나랑 아무 상관없는 일이지만, 국대나 축협에 대해 몇 마디 해주면 지성이 말을 무시할 축구 관계자는 없으련만.....지성이 게이면 어때, 국대만 살려다오....

  5. BlogIcon Shain 2013.06.20 16:37 신고

    이것도.. 여성혐오 확산과 관계가 있으려나요
    '당연히' 당연하지 않습니다..

    • BlogIcon 즈라더 2013.06.20 16:52 신고

      요새 범람하는 여성 혐오 중엔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많아서 이런 일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6. BlogIcon 송인길 2013.06.20 18:14 신고

    네그럿쵸하하

  7. BlogIcon 시렌 2013.06.20 20:32 신고

    아직 결혼날짜 잡힌 것도 아닌데 아나운서 직업 그만둘거냐 박지성 선수가 국내 유턴할거냐 이야기 하는건 너무 앞서 나가는 것 같은데요. 기성용, 한혜진 커플이야 결혼 확정됐으니 그같은 얘기를 해도 된다지만.

    • BlogIcon 시렌 2013.06.20 20:35 신고

      국대경기 보면 상대를 압도하는 기량을 선보인 적이 거의 드물은데 이상하게 지나고 나서 그 시절을 미화하고 구관이 명관 타령을 하죠. 이번 이란전도 끝나고 나니 조광래 감독이 그래도 최강희 감독보단 잘했다 소리를 하는 사람들 있더라구요. 레바논 졸전과 삿포르 참사는 까맣게 잊고.

    • BlogIcon 즈라더 2013.06.20 21:30 신고

      이 글이 작성되던 시점에는 그런 이야기가 오가는 기사를 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말이 많았으니까요. ㅎ


      졸전에 관해서는 뭐.. 얼른 박지성 소식으로 욕이 사라지면 좋겠어요. 허허.

  8. BlogIcon 몽돌 2013.06.20 23:23 신고

    재밌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진 않았는데 즈라더님의 글을 읽고 보니 많이 공감이 되는군요.
    자세한 속사정은 모르지만 차두리의 경우가 예가 될런지...

  9. BlogIcon 아스타로트 2013.06.21 14:52 신고

    축구팬들 입장에서는 선수가 최우선이겠지만 다소 숭배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서로 좋아서 결혼하는데 누가 아깝다느니 하는 게 참 생각없는 소리같아요.

  10. 손님 2013.06.21 20:14 신고

    그러고 보니 시합이 있었군요
    안봤는데 처참히 발렸다고 게시판이 뜨겁던데 말이죠
    어느 정도로 못했는지 궁금하지만 반응보니 찾아보기도 꺼림직해서....

    스포츠스타의 결혼소식에선 이상한 댓글이 너무 많아서 저는 댓글은 일부러 안봅니다
    결혼소식 들리면 그저 배려하고 잘살기를 바랄뿐이라는

  11. 어쨋든 박지성은 세계 수익 40위 선수라는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근데,,증권가 쯔라시돌던데,,,듣다보니 어이가 없어서 웃음 ㅋㅋㅋ
    근데 그걸 믿는사람도 있다는게 더 웃김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