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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건적의 난, 십상시의 난, 동탁의 난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한나라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난세에 종지부를 찍을 것처럼 굴던 동탁이 측근 여포에게 사살당한 뒤 세상은 본격적으로 군웅할거 시대에 돌입한다. 연주의 조조, 서주의 유비, 수춘의 원술, 기주의 원소, 유주의 공손찬 등 강력한 세력이 자리를 잡아 일어났고, 서량의 마등, 익주의 유언 등이 반란을 꿈꿨다. 동탁의 죽음부터 관도대전까지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많은 군웅이 서로 죽이고 합친 끝에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등극한 게 바로 조조와 원소다.

 그런 조조와 원소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대결 무드를 만들었는지 잠깐 살펴보자.

지역을 잘 모르겠으면 지도를 참고해주세요.


 조조는 한나라 환관 조등의 손자로 본래 하후씨였으나 아버지인 조숭이 조등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조씨로 바꿨다. 황건적의 난을 거치면서 유명세를 탔으며, 반동탁연합군에서 활약하며 입지를 다졌다. 동탁과의 전투에서 조조는 패배할 것을 알고도 용감히 나가 싸우며 동탁군의 위력에 겁먹은 제후들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냈는데, 덕분에 동탁의 부장인 서영에게 패배했음에도 오히려 이미지가 좋아져 중원의 여러 인재에게 인기를 끌었다.  

 동탁이 군사를 이끌고 장안으로 강제 천도하자 목적을 잃은 반동탁연합은 뿔뿔이 흩어졌고, 조조는 원소의 휘하에 들어가 원소가 북방을 공략하는 동안 연주를 구심점으로 주변 제후들과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당시 원소와 조조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세력은 바로 흑산적으로 100만 명에 이르는 무리가 있었는데, 조조는 원소의 객장 격으로 나서 연주에 침공해온 흑산적을 물리친 후, 역시 연주에 쳐들어온 100만 명 황건적 잔당까지 물리쳤다. 이 황건적과의 전투를 통해 연주목(연주를 다스리는 사람)이라 칭한 뒤 황건 잔당을 흡수해 취약한 군사력을 보강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원술이 도겸, 공손찬과 함께 군을 일으켜 공격해오자, 조조는 원술을 대파하여 남쪽으로 도망치게 하고, 이후 서주 공략에 나서 도겸이 항복하도록 했다. 그러나 여기서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도겸은 자신이 조조를 공격했다는 사실로 보복당할까 두려웠는지, 조조의 아버지인 조숭을 극진하게 대접하여 호송하고자 했는데, 호송 임무를 맡았던 부하 장개가 조숭을 살해하고 만 것이다. 이에 분노한 조조는 병력을 이끌고 서주 정벌에 나서 '서주대학살'을 일으킨다. 이때 죽은 사람이 수십만 명. 심지어 가축까지도 남겨두지 않고 모조리 죽이는 악랄한 면모를 보였다. 

 이런 조조의 모습을 보고 충격받은 진궁은 여포를 끌어들여 연주를 점령했고, 도겸은 북방에서 위세를 떨치던 객장 유비에게 도움을 청했다. 조조에게 닥친 첫 번째 위기였다.


 조조가 이렇게 헤매는 가운데, 원소는 물러섬 없이 꾸준히 자신의 힘을 길러갔다. 원소는 본래 병사를 이끄는 능력, 전략이 아주 뛰어났고, 무엇보다 인재를 끌어오는 인덕이 있었다. 황제 폐위를 강력하게 반대한 원소에게 동탁이 "네가 뭐길래 막느냐?" 라고 말하자, 원소는 칼을 고쳐잡고 "세상에 강한 자가 동공(동탁)뿐인 줄 아십니까?"라고 외친 후 궐 밖으로 나갔다고 한다. 이때 보여준 강건한 모습과 반동탁연합군 구성 당시 보여준 깊은 전략 등이 여러 제후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기에 한복의 아래에서도 묻히지 않았던 것이리라.

 원술이 공손찬, 도겸과 연합해서 위협해오자 원소는 조조를 움직여 도겸과 원술을 격파하도록 한 뒤 자신은 공손찬과 맞섰다. 문제는 이 공손찬이란 인물이다. 조조가 상대한 인물들이 만만한 인물인 건 아니지만, 공손찬은 오환족을 비롯한 이민족과의 전쟁에서 괴력을 과시하며 군벌 가운데 가장 먼저 두각을 드러낸 인물이었다. 게다가 원소가 황제를 노린다고 주장하며 명분까지 얻은 상태.

 이런 사정을 고려해 처음엔 공손찬을 회유하려고 했던 원소는 공손찬이 난폭한 정치로 민심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전쟁을 벌이기로 하는데, 공손찬이 병력 규모도 더 크고 기세도 맹렬해서 수세에 몰렸다. 공손찬이 쳐들어올 때마다 승리하긴 했지만, 큰 타격을 입히지 못해 점차 국지전 기색이 짙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천의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전쟁이 길어질 찰나에 공손찬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공손찬이 유주목 유우를 살해한 것은 역시 치명적인 실수다. 유우는 중국 전체가 전화에 물들어 끔찍하게 변해갈 때 오히려 유주를 태평성대로 만든 대정치가. 유우가 다스리던 당시 유주에는 무려 100만호가 살고 있었을 정도로 풍요로웠고, 그런 놀라운 정치력 덕분에 황제 후보 1호(?)로 명명될 수 있었다. 반면, 공손찬은 파괴할 줄은 알아도 다스릴 줄은 모르는 명백한 졸부였다. 나라가 정상이었다면, 장군으로서 많은 활약을 펼쳤겠지만, 특정 지역을 다스리는 등의 정치적 소양은 거의 갖추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자기 지역이 황폐해지는데도 전쟁을 반복하는 공손찬을 저지하려 드는 유우를 보고 분노를 이기지 못한 공손찬이 그를 참혹하게 살해하고 말았던 것.

 공손찬이 저지른 두 번째 실수는 유비를 도겸에게 보낸 것이다. 당시 유비는 공손찬의 객장으로 대단히 큰 활약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유비가 서주로 간 것은 사실상 공손찬과 결별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공손찬의 부장인 전예, 조운과 유비가 각별한 사이였던 것을 보아서 공손찬군 안에서 상당한 인덕을 쌓았던 게 틀림없고, 그의 이탈은 공손찬 진영의 커다란 손실이라고 봐야 옳다. 실제로 여러 전투에서 패배했음에도 세력을 잃지 않던 공손찬은 유비가 떠난 뒤 급속도로 쇠퇴하기 시작한다.

 원소에겐 최고의 기회였다. 유우가 공손찬에게 억울하게 죽자, 이에 격분한 유생들이 달려와 분노를 쏟아내고 당당하게 죽기를 반복할 정도로 공손찬은 인심을 잃어버렸다. 은근히 신경 쓰이던 유비는 공손찬의 곁에 없다. 원소는 공손찬 곁을 떠난 인재들과 백성까지 흡수하면서 공손찬을 북쪽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한편, 조조는 서주를 공격하다가 유비라는 뜻밖의 장애물을 만나 진격을 멈췄고, (아마 이 과정에서 유비가 군사적 재능을 뽐냈고, 관우와 장비 역시 압도적 무위를 과시했던 모양이다.) 연주가 여포에게 함락되었단 소식을 듣고 급하게 퇴각했다. 근거지를 잃은데다 민심까지 잃었으니 끔찍한 참패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던 조조는 2년에 걸친 전쟁 끝에 여포를 물리치는 데 성공했으나 남아 있는 병력이 얼마 되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주에서 도겸이 병사하고, 유비가 서주를 다스리게 되어 큰 위협으로 남았다. 아직 세력을 완전히 다지기도 전에 대학살을 벌인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셈이랄까. 그런데 조조에게도 원소와 마찬가지로 옛날 사람들이라면 천의라 할 만한 것이 찾아왔다.

 원소가 황족의 죽음을 이용해서 기회를 잡았다면, 조조는 아예 당시 황제인 헌제가 직접 곁으로 오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각과 곽사는 마등과 전투를 벌여 1만 명을 죽였을 정도로 군사적 재능이 뛰어났지만, 정치적 재능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으로 헌제를 가운데 두고 서로 싸우는 바람에 군사력을 많이 소모한 상태였다. 헌제는 그 틈을 타서 낙양으로 도망쳤는데, 조조는 헌제를 영접해 허창으로 천도한 뒤, 낙양을 점령해 장안을 노렸다. 그리고 천재적 정치 재능을 토대로 안정된 기반을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주변을 압도할 만한 강력한 군벌이 되었다. 이윽고 조조는 이각을 정벌해 장안까지 세력을 펼쳤다.

 호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유비가 조조에게 항복해온 것이다. 서주목이 되긴 했지만, 제대로 서주의 관리들에게 인정받은 건 아니었는지 유비의 부재를 틈타 여포가 하비성을 점령하고 유비를 소패로 쫓아내는데, (장비와 조표가 다툼을 벌인 게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서주의 인심이 전부 유비를 향해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하비성이 점령될 리 없었다.) 유비는 소패에서 재기를 노리다가 여포의 공격에 기반을 잃고, 어쩔 수 없이 조조에게 귀의했던 것.

 조조를 망하게 할 뻔했던 이들의 다툼이라 아이러니하지만, 이런 기회들을 하나씩 잡아가던 조조는 기어이 서주를 정벌해 여포를 죽이고, 수춘을 정벌로 원술을 죽여 당시 중원이라 불리던 지역 대부분을 손에 넣는 데 성공한다. 


 원소가 조조의 곁에 헌제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건 공손찬을 완전히 수세로 몰아넣었을 때의 이야기다. 공손찬과 싸우는 동안 쳐들어온 흑산적을 토벌해 압도적 명성을 과시했고, 공손찬 역시 성 하나로 버티도록 할 정도의 괴력을 보였던 원소다. 원소의 마음속에선 이미 자신에 의해 천하는 통일된 것이나 다름없었을 터. 그런 마당에 조조가 헌제를 옹립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이각과 곽사의 곁에 있을 땐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던 헌제가 조조의 곁에선 엄청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자신보다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조조가 강력한 적이었음을 그제야 깨달은 셈이다. 조조를 공격하는 것 자체가 헌제를 향한 반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당시 황제를 꿈꾸던 제후들에게 어떤 느낌이었을지 알 만하다.
 

 그렇게 점차 사이가 악화하던 원소와 조조는 공손찬과 원술이 패망한 이후 본격적으로 전쟁을 준비한다. 물론, 역량의 차이는 컸다. 본래 원소란 인물 자체가 (적어도 당시엔) 조조보다 뛰어나다는 인식이 있었고, 차지한 지역의 규모 역시 원소가 더 컸다. 유우가 잘 다져놓은 유주나 자신이 다스려온 기주, 공손찬과 흑산적을 토벌하고 얻은 군사력, 인재 등을 고려했을 때 인적, 물적 자원 모두 원소가 압도하고 있었다. 또한, 원소는 이민족 유화책을 써서 오환을 비롯한 여러 이민족의 도움까지 받고 있었으므로 이 역시 원소의 우세. 그러나 조조란 인물은 죽었으면 죽었지 남에게 지고 살 인물은 아니었다는 게 문제다.

 황하를 기준으로 남북으로 나누어진 형세에서 양군이 전격 대치했다. 삼국지 역사의 흐름을 정할 첫 번째 전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1. 이 시기를 기점으로 관우와 장비는 만인지적이란 별명을 얻습니다. 조조는 유비를 데려다 놓고 "천하에 영웅은 당신과 나 뿐인 것 같소." 드립을 치지요. 그런데 황당한 건 유관장이 이렇게 엄청난 평가를 받게 된 경위가 서술되어 있지 않아요. 이 인간들이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평가를 들었던 걸까요?

2. 이 시기에 조조가 유비를 자신의 맞수로 인정한 것은 원소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었을 수 있겠지만, 적벽대전 직후에도 "유비는 나의 맞수이나 계책 사용이 좀 늦구나" 라고 말하는 걸 봐서 분명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존심 강한 조조가 유일하게 맞수라고 인정한 인물이 바로 유비입니다.

3. 글을 쓰다 보니 사건의 순서가 꼬이고 꼬여서 얼버무렸습니다. 틀린 부분이나 추가하면 좋겠다 싶은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주시길.

4. 이렇게 돈 한 푼 벌기 어려운 글을 5시간 걸려서 썼습니다. 뭐 그렇게 오래 걸렸느냐고요? 나도 몰라요. 미쳤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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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포장지기 2013.08.07 07:57 신고

    잘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 베리알 2013.08.07 08:26 신고

    하앍 하앍, 왕꾸냥 레드! + +

    근래 나오는 삼국지연의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옛날 일본에서 재차 가공된 (사실상) 일본판 삼국지연의의 축축약 번역본들을 보다가,
    좀 더 멀쩡한 책을 보면서 관도대전이란 말에 깜놀했던 기억이 납니다.
    관우 띄워주기 콤보(안량 문추 격파에, 오관돌파)까지 으리으리하게 나오고는
    갑자기 원소GG, 조조짱이셈~하고 말아버리니... ^^;;;

  3. BlogIcon 에우르트 2013.08.07 09:38 신고

    와우 간만에 삼국지 내용을 보니 무지 재미있네요....읽는데 10분넘게 걸린 것 같습니다 ㅋㅋ
    읽으면서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나네요.....이후에 유비가 형주를 먹고......촉을 먹고...
    쭈욱 내용 계속 써주세용 ㅋㅋ

  4. BlogIcon 나르사스 2013.08.07 10:10 신고

    저번에도 그렇고 삼국지 관련 글 잘 쓰시네요^^.

  5. BlogIcon 청해용왕 2013.08.07 10:32 신고

    관우의 경우에는 정사에도 몇 없다는 일기토를..그것도 적긴 한가운데에 뛰어들어 성공한 인물이니 그럴지도요. 장비는 아무래도 술취해서 조조군 장수들가 패싸움이라도 벌였던거 아닐까나요..ㅎㅎ

    요새들어 가끔 생각나는 일이지만 유비같은 경우에는 요즘세상에 태어났다면 불세출의 세일즈맨, 영업사원으로 활약할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직접 기업을 세우면 1인자가 되기 힘들지도..^^;;

  6. BlogIcon 무념이 2013.08.07 11:34 신고

    이렇게 잘 정리된 글을 보니 정리가 쏙쏙 되네요~
    언제나 무협지 보듯 술술 흘려 읽어서요~ ㅎㅎㅎ

  7. BlogIcon dicer 2013.08.07 14:58 신고

    5시간 고생하신 덕분에 재밌게 읽고 갑니다 ^^

  8. BlogIcon 지후대디 2013.08.07 15:01 신고

    삼국지는 어른소년들에게도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겁니다 ㅎㅎ 특이하게도 삼국지연의 에서도 전 관도대전이 가장 재미있고 조조 죽음이후는 영 재미가 없는걸 보니 조조 빠 인가 봅니다

    • BlogIcon 즈라더 2013.08.07 16:24 신고

      나관중 역시도 조조, 유비가 죽는 시기 이후 약빨이 떨어졌는지
      제갈량 죽는 순간부터 이야기가 힘빠지죠. ㄷㄷ

  9. 누가 시키면 이런 글을 쓰겠습니까....ㅎㅎㅎㅎ
    재밌게 읽었습니다.

  10. BlogIcon 붉은비 2013.08.08 00:49 신고

    개인적으로 유우가 그리 높이 평가할 만한 위인이었는지는 의문이 많습니다.
    유능한 정치가였다면 공손찬에게 그리 허무하게 죽지도 않았을 거라고 보거든요.
    당시 황실의 종친 세력들만으로 비교해봐도 유표에 한참 못미치는 위인이라고 봅니다.^^;

    조조가 황제를 차지한 건 행운 내지 천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원소나 유표 정도면 충분히 조조보다 먼저 헌제의 신병을 확보하는 게 가능했을 겁니다.
    사료가 없으니 추측일 뿐이지만 유표에게는 헌제가 직접 제의를 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죠.
    하지만 다들 '황제 따위 그저 혹일 뿐' 이라 생각했다고 봅니다.
    극단적으로 실리만 고려하는 이들이 보지 못한 황제의 가치를 알아본 것만으로도
    천운 내지 행운이라기보다는 조조의 실력이라고 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사실 관도대전 이후로 중국은 조조가 먹었다고 봐야하지 않나요?^^
    전한이고 후한이고 언제 강남이나 사천 지역에 신경이나 썼다고... ㅎㅎ
    저는 사실 조조가 굳이 적벽대전을 일으킨 이유도 이해가 안 갑니다.

    • BlogIcon 즈라더 2013.08.08 02:01 신고

      너무 유능해서 문제였다고 하지요.
      전쟁에 약해서 그렇지..

      공손찬이 하도 난폭하게 정치하니까 공손찬 지배 하의 백성들이
      모조리 계를 비롯한 인근의 마을로 도망쳐버리고..
      게다가 당시 유주에만 100만호가 살았다는 건 정말 기적이거든요.
      이후 위진의 인구가 100만호가 안 되니까요.

      적벽대전은 거의 내친김에나 다름 없지만, 적어도 그 일대는
      초나라의 영역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유표가 다스리던 형주를
      버릴 순 없는 노릇이었고..

  11. BlogIcon 알숑규 2013.08.08 02:16 신고

    개인적으로는 내가 이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면서 몰입해 보는 편인데,
    조조나 유비나 범인인 제가 생각하는 방향대로는 행동하지 않더군요.

    특히 기회라는 놈 앞에서는 무슨 본능이라도된 마냥 폭발적으로 움직이곤 하는데
    나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그게 더 힘들다는 걸 알게되니 정말 보면 볼 수록 새삼스러운 인물들입니다.

    • BlogIcon 즈라더 2013.08.08 13:48 신고

      그 와중에 운이 없는 친구도 있고..
      운이 너무 좋은 친구도 있고..

      운이 없는데 끝까지 버티는 친구도 있고..

      이 양반들 노는거.. 당시엔 지독하게 떨었겠지만,
      지금 바라보면 재미있지 말입니다.

  12. BlogIcon 시렌 2013.08.08 21:03 신고

    안량, 문추 때문 아니었던가요. 그 전은 아닌줄 알았는데.

    • BlogIcon 즈라더 2013.08.08 21:25 신고

      관우는 안량을 벤 것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장비는 그런 에피소드가 전혀 없어요.

      유비 역시 아무 에피소드 없다가 조조에게 항복했을 때
      조조가 자기 맞수라고 인정해버리죠. ㄷㄷ

  13. 손님 2013.08.10 00:31 신고

    잘 보고 갑니다

    언제쯤 삼국지 소설을 출간하실지 기대되네요 ^ ^

  14. 다크나이트 2013.08.12 17:50 신고

    원소를 조조가 아주 박살낸 관도대전...세력은 분명히 원소 쪽이 컷지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