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먼저 보기

 조조와 원소가 본격적인 대결을 벌이기 직전에 조조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유비의 반란이다. 유비가 남의 아래에서 일할 사람이 아니라며 죽일 것을 권유했던 정욱의 의견을 따르지 않은 것이 조조의 패착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조조가 유비란 인물을 얕잡아봤던 건 아니다. 조조 역시 유비를 두고 '자신과 겨룰만한 상대'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존재하므로 아마 유비를 얕잡아본 게 아니라 유비의 재능을 어떻게든 사용해보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조조는 왕충과 유대를 보내 유비를 공격하게 했다가 그들이 모조리 패하자 자신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유비를 무너트렸다. 그러나 전략적 승리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유비는 멀쩡하게 살아서 원소의 곁으로 갔고, 서주의 병력이 아주 많이 줄어드는 바람에 곤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조조군의 명장 장패가 서주병을 지휘하며 원담이 있었던 청주를 교란했기에 아슬아슬하게 원소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었지만, 서주대학살과 유비 공격으로 서주에 거주하던 백성 대부분이 조조 곁을 떠났다. 

지역을 잘 모르겠으면 지도를 참고해주세요.


 한편, 유비의 반란은 원소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유비 역시 원소에게 즉시 남하할 것을 요구했는데, 원소가 뜻밖의 문제에 직면해 있었던 모양이다. 원소가 공손찬을 정벌하면서 큰 공을 세운 건 국의, 저수, 전풍 등의 기주와 병주 호족들이었다. 원소로선 미덥지 않은 이야기다. 호족들의 힘에 과하게 의지하면, 앞으로 자신의 세력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수없이 구해줬던 국의를 숙청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삼국지>와 <후한서>에서 원소 진영의 기록이 대부분 유실되거나 누락되었음에도 드물게 이름이 남아 있던 원소군 명장이 국의, 전풍, 심배, 곽도, 저수다. 특히 이 가운데 가장 특출난 재능을 보인 게 국의. 그런 명장을 숙청했을 정도로 원소와 하북 호족의 대립이 심했던 것 같다.

 원소는 많은 계책을 내어 도와왔던 저수의 감군 권한을 세 사람(순우경, 저수, 곽도)이 나누어 갖도록 지시했다. 이런 숙청 과정에서 삼국지 전체를 통틀어도 손꼽힐만한 명장인 장합 역시 주역을 맡지 못하고 밀려났다. 이렇게 기주, 병주의 호족과 명사를 숙청한 원소가 대신 택한 인물들은 대체로 중원의 인재들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안량 역시 중원의 인재로 그가 선봉군을 맡은 것 역시 이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원소의 결정이 딱히 나쁜 건 아니다. 분명히 지나치게 강해진 하북 세력을 견제하는 건 타당하다. 그러나 그 도구로 이용한 중원의 인재들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사실, 원소가 조조와 대결을 앞두고 짜낸 전략은 탁월했다. 청주에서 아들 원담이 남하하도록 했고, 손책이 남쪽에서 조조를 공격하도록 했으며, 자신이 직접 허창을 향해 남하했다. 압도적인 병력으로 조조를 사방에서 포위한 셈으로, 안 그래도 남쪽에서 유표가 공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마당에 이렇게 적이 불어났으니 조조가 얼마나 불리했는지 알 만하다. 그러나 이 전방위 공격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언급한 대로 원소가 중용한 중원 출신의 재능이 매우 떨어졌기 때문이다.
 


 먼저 자기가 이끄는 본군의 선봉장으로 내세웠던 안량은 조조가 직접 이끄는 군사와 교전을 벌여 잘 싸웠지만, 조조군의 끈기 있는 전투에 약간 고전하는 모양새를 보이더니 군중을 가로질러 나타난 관우의 일격에 참살당하고 만다. 안량의 후진으로 나섰던 문추는 아예 순유의 계책에 휘말려 전사했다. 즉, 원소가 중용한 중원 인사 두 사람이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죽어버렸다. 그외에 남쪽에서 올라오기로 했던 손책은 강동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동쪽 병주에서 서주로 내려가기로 했던 원담은 장패라는 뜻밖의 명장과 만나 고전했다. 이런 인재 배치를 떠올린 사람 역시 중원 출신의 곽도. 이만하면 재앙에 가까운 인사라 할 만하다.

(유비의 반란 당시 남하하지 않은 것도 전풍을 견제하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크다. 아들이 병중이라는 이유로 남하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건 그저 핑계에 불과할 것이다. 그 시점에서 전풍, 저수, 장합 등의 계책을 모조리 무시하는 게 원소다.) 

 반대로 생각하자면, 조조와 조조 휘하의 인재들이 아주 뛰어났다 볼 수도 있다. 먼저 유비의 반란을 조조 자신이 직접 토벌했고, 항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장패에게 서주를 맡겨서 원담을 마크하도록 한 것은 정말 과감한 인재 기용이었다. 남쪽에서 손책이 공격해올 것은 합비에 유복을 주둔케 하면서 방어했고, 원소가 죽은 뒤엔 서쪽의 장안에 종요와 장기를 보내서 마등과 동맹을 맺고 곽원의 남하를 막아냈다. 그러나 조조는 단 한 사람을 막아내지 못했다. 바로 총사령관인 원소 본인이다.

이 시기에 조운 자룡이 유비와 합류하지요.


 원소는 선봉장들의 잇따른 패배가 있었음에도 마치 아무 문제 없다는 것처럼 황하를 건너는 데 성공한다. 잘 단련된 대군이 있었고, 자신의 용병술을 믿었던 원소였다. 원소가 관도에 도달하자 조조는 더 물러나지 않고 원소군과 전투를 벌이는데, 이 전투에서 엄청난 패배를 당하고 만다. 이후 조조는 정면대결을 피하고 관도에 있던 성과 주변 산지, 병목(길이 하나로 모이는 곳)에 토벽과 목책을 만들어 원소군의 남하를 저지했다. 당시 원소의 군세가 조조의 10배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원소 역시 군사를 전부 관도에 집중한 상태가 아니므로 관도에서 대치했던 병력의 차이가 컸는지 알 수 없는바. 애초에 전쟁이 조조에게 불리했던 건 원소의 뛰어난 군재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저수, 전풍 등이 내놓은 훌륭한 계책을 모두 무시했고, 선봉군이 모조리 패전하는 아픔 속에서도 굳건히 밀고 내려와 조조군을 격파한 원소의 재능엔 할 말을 잃었다.

 이 시기에 조조는 허창에 머무르던 순욱에게 편지를 보내 "허창으로 물러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시오." 라고 물었는데, 순욱이 "그냥 거기서 쪼그리고 쌈박질 하시오." 라고 말하자 그대로 따른다. 조조 역시 가망이 없다고 여긴 전투였던 셈이다. 이 와중에 여남을 비롯한 예주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황건적 출신의 유벽이 군사를 이끌고 허창을 공격하고자 했다. 조조는 조인에게 군사를 주어 유벽과 유벽을 돕기 위해서 내려온 유비를 공격해 깨부수었지만, 공도가 이어서 반란을 일으키는 등 진압되긴커녕 점차 사태가 악화되었다. 이 사실을 파악하고 돌아온 유비는 원소에게 자신이 유표와 함께 남쪽에서 공격하겠노라고 말한 뒤 다시 여남에서 공도와 함께 수천 병력으로 조조를 공격했다. 이번 공격엔 채양이 와서 유비와 싸웠는데, 유비에게 크게 패해 군사를 잃고 전사한다. 절망에 젖어갔을 조조. 그때 순욱이 관도에서 계속 방어하라고 한 이유가 등장한다. 원소군 사이에 균열이 엿보이기 시작한 것.

 전장의 바람을 잘 읽어야 승리할 수 있다고 했던가. 당시 원소군 보급의 핵심지인 오소에 순우경이 파견되어 있었는데, 병사 수가 그리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를 걱정한 저수와 장합이 지원군을 보내야 한다고 말했으나 원소가 (당연히) 듣지 않았다. 허유의 투항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된 조조는 즉시 5천 기병을 이끌고 오소를 습격해 순우경을 사로잡고 보급로를 끊었다. 글쓴이가 항상 말해왔던 것처럼 병사는 밥을 먹어야 제 역할을 한다. 체력이 충분한 상태에서도 주먹질 몇 번 하면 지치는 게 사람인 마당에 병장기를 들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병사들은 어떻겠는가. 사기가 바닥을 기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 문제의 책임을 장합과 고람, 저수에게 떠넘기려고 했던 곽도(황호와 맞먹는 간신배 등극) 덕택에 지휘부에서 장합과 고람이 반란을 일으켰고, 군중이 혼란에 빠졌다. 적군과 아군을 가릴 수 없어 원소의 생사를 모르던 군사들이 뿔뿔이 흩어졌는데, 조조가 이를 놓칠 리 없다. 관도에서 수많은 군사가 돌격해 원소군을 몰살시켰다. (기록에 의하면 조조는 원소의 병사들이 항복했음에도 생매장해 죽였다고 한다.) 


 보통 관도에서 전투가 끝나고 원소의 패배가 확실해졌다고 여기는데, 그건 원소를 너무 얕잡아봐서 그렇다. 관도대전으로 원소가 물러났지만, 조조의 타격도 엄청난지라 잠시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었기 때문에 조조 역시 북쪽으로 가지 않고 중원에서 전후회복에 집중했다. 조조가 힘겹게 추스르는 동안, 놀랍게도 원소가 그대로 남쪽으로 내려와 흩어져 있던 자신의 나머지 군세를 수습했다. <삼국지> '무제기'에선 창정까지 내려와 군세를 수습하던 원소를 공격해 패주케 했다고 말하지만, 그 이후 원소가 아무렇지도 않게 북방의 반란을 진압하는 걸 보면, 사실인지 의문이 생긴다. 원소는 패잔병을 수습해 조조의 공격이 있기 전에 퇴각한 것으로 보이며, 이 사실을 마치 공격해 무너트린 것처럼 묘사한 게 '무제기'의 기록 아닐까?

 조조가 여남에 있던 유비까지 박살 내고 힘을 다시 기르기 시작한 것처럼 원소 역시 당당하게 다시 재기에 성공한다. 그는 패전 이후 발생한 반란을 진압하고 관도대전에서 패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곽도를 경질했다. 뒤늦게 지나치고 그릇된 숙청이 전쟁을 망친 것임을 깨달았던 모양이다. 조조는 그렇게 힘을 회복한 원소를 보고 상당히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는 원소를 공격하긴커녕 먼저 남쪽의 유표를 정벌해 평안케 한 뒤 원소와 결전을 치르자고 말했는데, 순욱이 반대하고 나섰다. (원소 킬러 순욱!) 남쪽으로 군사를 움직였다가 원소가 공격하면 막을 방도가 없다는 이유였다. 원소는 실제로 남쪽으로 향할 생각이 있었던 모양으로 조조는 차마 북진하지 못한 채 황하 인근에서 대치만 하고 있었다.

 이렇게 자칫 더 길게 이어질 수 있었던 전쟁이 끝난 계기는 원소의 죽음이었다. 원소는 자신의 인재 활용 실패로 패전한 것을 후회했던 모양이고, 후계자 문제로 원담을 내쫓으면서 생긴 세력의 균열에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그렇게 끙끙 앓던 원소는 202년 피를 토하고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원씨 일가는 분열을 거듭하며 조조에게 틈을 보이고 만다.

 이렇게 조조와 원소의 치열했던 전쟁이 끝났다. 이것이 삼국지 역사의 흐름을 결정한 첫 번째 대전(大戰)인 관도대전이다.


 원소가 죽은 뒤 원씨 가문은 원담과 원상의 세력으로 분리된다. 본래 장자인 원담이 계승자여야 하지만, 원소는 원담을 자신의 후계자로 여기지 않아서 형의 아들로 입적시켰고, 이로 말미암아 원담은 원상을 미워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들은 원담은 자신이 자리를 잇겠다며 업으로 향했으나 심배가 꾸민 유서로 이미 원상이 후계자가 된 뒤였다. 원담은 독립을 선언한 뒤 원상과 대립, 화해를 반복하며 세력 약화를 초래했다. <삼국지 연의>에서 원담과 원상에 관해 그다지 훌륭하게 꾸미지 않은데다 만화 <창천항로>에선 두 사람을 극단적인 찌질이로 그리는 바람에 평가절하되는 분위기지만, 원담과 원상은 매우 뛰어난 인물이었다. 원담은 청주를 다스리며 여러 해적, 황건적 잔당을 토벌한 뒤 청주 지역을 평안하게 함으로써 백성들의 지지를 얻었을 정도로 수완과 군재가 뛰어났다. 원상은 말할 것도 없다. 조조는 직접 군사를 이끌고 북진해서 승기를 잡아가다가 여양에서 원상과 전투를 벌여 어마어마한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기록을 살펴보면 이 전투가 축소되어 있다는 사실을 손쉽게 알 수 있을 정도. 아예 허창까지 도망쳐야 했을 만큼 조조에게 처참한 패배를 안겨준 게 원상이란 인물이다. (꽃미남 주제에 재능도 뛰어난 원상. 세상은 불공평.)

 이런 뛰어난 두 인물이 힘을 합쳐서 조조와 싸웠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었겠지만, 원담의 진영에 곽도가 있었던 게 문제다. 원소가 관도대전에서 패배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고 경질되었던 곽도는 어느새 원담의 심복이 되어 있었는데, 원담을 부추겨 원상과 힘을 합치지 못하게 했다. 결국, 원담은 조조와 동맹을 맺고 원상을 공격해 북쪽으로 몰아내더니, 기주를 장악한 뒤엔 동맹을 깨고 조조를 공격한다. 이에 조조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원담과 맞섰는데, 원담 역시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 한 번 패전하는 고전 끝에 물리칠 수 있었다. 

 한편, 북쪽으로 쫓겨간 원상은 연이은 반란으로 세력을 완전히 잃고, 요동의 공손강에게 처형당해 짧은 삶을 마감한다. 그리고 그렇게 조조의 세상이 열렸다.


* 순우경은 상당히 훌륭한 인물이었던 모양입니다. 조조는 순우경을 자신의 사람으로 삼고 싶어 했으나 코를 베여서 흉측하게 변한 순우경이 거울을 볼 때마다 반란을 꿈꿀 것이라는 주장을 듣고 처형하고 말았지요.

* 조조는 오소를 함락시킨 뒤 자신의 부하들이 원소와 내통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지만, 이 사실을 불문에 부쳤다는군요. 자기 역시 원소를 이길 수 없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라고 밝혔는데, 실제로는 너무 많은 부하가 내통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 조조가 원소를 이긴 전략은 모두 순욱의 머리에서 나오다시피 했습니다. 또한, 전술 측면에선 순유의 재기가 번뜩였습니다. 순씨 가문이 조조를 패왕으로 만든 셈이네요.

* 원상은 엄청난 꽃미남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조조를 탈탈 털어버렸던 당시 나이가 많아 봐야 20살 정도. 난 20살 때 뭐 하고 있었더라..

* 장합, 저수, 전풍은 원소에게 조조의 군세가 강하니 지구전으로 나가자고 주장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관도에서 맞붙은 조조와 원소의 군사력이 비슷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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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6

  • BlogIcon 붉은비 (2013.08.09 08:49 신고)

    소위 3대 병법서라 하는 육도, 손자병법, 오자병법이 모두 춘추전국 시대에 나왔으니,
    후한 시절의 장수들이 '이론적으로' 훌륭한 전략을 짜는 거야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합니다.
    문제는 얼마나 현실적으로 구현되느냐, 라는 거죠.
    원본초가 그림은 잘 그리지만 이를 제대로 구현할 인재 등용 역량이 없음은 일찍이
    반 동탁군의 총사령관을 맡았을 때 잘 드러난 바 있습니다.
    더구나 원소는 사실 관도대전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어요. 공손찬의 세력을 병탄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당시 원소가 차지했던 지역은 화북평야의 7할 이상. 장기전으로 간다면 시간은 무조건 그의 편이었습니다.
    전략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 '언제 싸울지' 정하는 거죠.
    관도대전 이후 세력이 건재했음에도 내분으로 갈가리 찢겼던 이유도 상당 부분 내부를 다지는 것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략가로서의 원본초를 그다지 높이 평가할 수 없군요.

    • BlogIcon 즈라더 (2013.08.09 15:19 신고)

      장기전으로 가면 오히려 조조가 유리합니다.
      헌제를 앞세워서 세력을 확장하는 상황이었고,
      유표나 손책과 같은 인물들이 어떻게 나올지 당시엔 알 수 없었죠.

      말씀하신 부분은 전략이 아니라 정략에 가까워 보입니다.

  • BlogIcon 니자드 (2013.08.09 09:35 신고)

    저는 이런 역사포스팅이 너무 좋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 베리알 (2013.08.09 09:52 신고)

    역사 속에서 후계자 문제를 볼 때마다 참 재미있지 말입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의 이야기들도 고개가 끄덕여지고,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이야기들도 고개가 끄덕여지고...

    장남이나 장성한 자식들보다, 막내나 어린 자식들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한둘도 아니고 흔한 걸 보면,
    정치적인 이유도 인간적인 이유도 다 결합된 결과들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뭐, 그렇긴 해도 원소가 원담을 이뻐라했다는 건 정치적인 이유와 별개로도 사실이었던 것 같긴 합니다. ^^

    • BlogIcon 즈라더 (2013.08.09 15:22 신고)

      원담이 아니라 원상..이겠죠? ^^;

      요새 삼국지 커뮤니티에선 원상을 두고 원경국이라 부르더군요.
      무지막지하게 예뻤다는 기록 때문에..ㅋㅋㅋ

  • BlogIcon 알숑규 (2013.08.09 10:37 신고)

    원씨 일가는 사실 지금 너무 박한 평가를 받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삼국지 관련 게임만해도;;
    하긴 삼국지니 오나라를 띄워야 하는 만큼 조조 세력만큼의 능력치 배분을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반대로 공손씨는 능력치 여부를 떠나 평판부터가 묘하게 좋아서;;

    • BlogIcon 즈라더 (2013.08.09 15:22 신고)

      전 삼국지 정사를 읽으면서 삼국지 게임 능력치를 싹 바꿔버립니다.

    • BlogIcon 알숑규 (2013.08.10 15:25 신고)

      저도 그러는데 일러스트는 못바꿔서;; 잘생겼고 귀족적으로 생겼다는 기록은 어디로 갔는지 신무장보다도 못한 얼굴이니;;;

    • BlogIcon 즈라더 (2013.08.10 17:11 신고)

      저는 일러스트도 바꿉니다.
      요새 얼굴 바꾸는 에디터도 나왔어요. ㅎ

  • BlogIcon RGM-79 (2013.08.09 14:02 신고)

    원소가 나서서 진 게 관도랑 뭐 하나 있었죠.
    과소평가 제대로 받은 게 원소라..

  • BlogIcon 시렌 (2013.08.09 20:16 신고)

    흔히 관도대전이 조조가 중원의 패권을 장악하게 만든 전투라고들 하는데 관도대전 이후에도 이야긴 한참 진행되죠.

    개인적으로 원소는 후계자 선정에 실패했던게 가문의 몰락을 앞당긴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BlogIcon 즈라더 (2013.08.10 01:40 신고)

      오환토벌 때 조조가 털릴 뻔 했다가 간신히 이긴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정신없이 쌈질했지요. ㅎㅎ

  • 손님 (2013.08.11 19:55 신고)

    삼국지 보다보면 느끼는게
    사망과 후계구도가 가장 큰 문제인거 같아요
    가장 중요한 시기에 사망하거나 후계자 때문에
    다 이루고도 한번에 망이니.....

    이러니 인생이 덧없다 하는지....

    • BlogIcon 즈라더 (2013.08.12 01:05 신고)

      승리자가 되려면 죽는 것도 잘 죽어야 하더군요. 허허..

    • 앙큼발랄 (2014.02.18 17:05 신고)

      후계자 잘못함훅감진시황도 기껏통일하고 아들대에 말아드셧죠

  • 다크나이트 (2013.08.12 17:55 신고)

    원소 쪽도 나름은 사정이 ...토착 호족들을 견제하려면은 자신의 직계 내지는 낙하산들을 박아놓아야 하는데...
    낙하산 성능이 그리 좋지 않났다라.....원소가 자식 농사+안정적 후계자 를 했더라면 조조가 과연 천하무적이 되었을지...

    • BlogIcon 즈라더 (2013.08.12 19:14 신고)

      농사는 잘 지었어요. 자식 농사는 잘 지었는데, 후계 구도가 엉망.

  • galgamess (2013.09.14 12:52 신고)

    원소가 군재가 있었다는 해석은 처음봅니다..

  • SB (2013.10.15 00:50 신고)

    어렸을때부터 삼국지를 즐겨읽고 코에이의 삼국지시리즈도 광팬이었던 사람으로서 다른 측면의 더 세세한 삼국지의 정보를 얻는것 자체가 즐겁습니다. ^^ 지금까지는 원소가 속이 좁고 자기 아집으로 많은 인재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활용하지 못해 패했다고 생각했는데 윗글을 보니 어느정도 납득이 갑니다. (유비가 서량호족출신인 마초를 끝까지 중용하지 않은것을 보면 유추해볼 수 있겠지요. 오나라도 결국 군주+주요 호족들의 연합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요.)

    근데참... 견제용으로 기용한 인물들이 너무 떨어지네요. 안량하고 문추는 뭐 그렇다쳐도 곽도 봉기 허유.... 전풍과 저수에 비해 넘 능력차이가 나고 인물도량도 떨어진다고 보여지죠. 근데 관도 전투에서 참 인상적인것은 전장에서의 장수들도 장수들이지만, 뒤에서 그 쪼들리는 보급선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조조를 독려한 순욱이 더 눈길이 갑니다. (나중에는 서로의 대의의 차이로 인해 팽당하는게 안타깝지만요.)

    훗날 한중에서 제갈량이 북벌을 할때 후방의 병참을 담당한 이엄이 자신의 관직욕심에 일부러 군량보급을 지연시켜 결국 퇴각으로 이루어지게 만들 사실을 보면... 앞서 말씀하신것처럼 앞에서 싸우는것도 중요하지만 뒤에서 안정적으로 보급하는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이것저것 살펴보면 위촉오 후계자에서 다들 망한 느낌이.... 이건뭐 아예 바보(유선) 아니면 재능은 뛰어난데 똘기혹은 단명 (위의 조비,조예, 오의 손등) 해서 이어지질 못하고 그나마 장기집권한 손권은 말년에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들을 아주 제대로 말아드시고 (이것 역시 장남 손등이 요절하고 후계자문제를 개판으로 책정해서 쓸만한 가신들이 후계자문제로 서로 데스매치를 해버린 인재소멸사건;;;) 참 왕권이 길게 유지되는것 어려운가 봅니다.

    • BlogIcon 즈라더 (2013.10.15 11:20 신고)

      시작하자마자 털린 안량, 문추.. 여기에 곽도까지 더하면 정말 답 없는 포진이죠. 이런 구성으로 조조를 몰아붙인 게 되려 신기하달까요.

      제갈량의 팔진법에는 보급에 관한 것도 있다던데, 그걸 무시해버린 것은 분명한 직무유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럼에도 이엄을 처형하지 못한 건.. 이엄의 세력이 강해서였을까요..?

  • 기아 (2013.11.12 06:13 신고)

    이문열의 삼국지를 봐도 삼국지는 사실상 원씨 격파로 끝났다고 평하죠. 아마 조조를 평생 과롭힌 두통은 원소때문에 생겼을 겁니다. 항상 마음졸이고 살아야 했으니깐요. 조조가 200년 관도대전부터 원씨를 다 토벌하기 걸린 시간이 무려 7년이죠.

    • BlogIcon 즈라더 (2013.11.12 14:54 신고)

      그 와중에 손자뻘되는 원상한테 탈탈 털려서 허창으로 도망가기까지..

  • 뭐래 (2014.03.25 00:39 신고)

    이야기가 일관성도 없고 그양 여기조시 들은 내용 짜깁기해서 다시 만들어낸 소설 수준이네요. 이랬더라 저랬더라 하는 내용의 출처는 어디있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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