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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카시마 테츠야. <불량공주 모모코><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고백>까지 연출하면서 자신만의 강단을 보여온 감독이다. 그 강단이란, ‘미친 세상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것. 그는 정신착란을 일으킬 만큼 산만하거나(불량공주 모모코) 섬뜩할 만큼 완벽하게 정제된(고백) 연출로 등장인물을 끔찍한 상황에 몰아넣은 뒤 당신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세상은 미쳤고 당신 역시 미쳤다. 아닌 척 위선 떨지 말아라.” 라며 윽박지른다. 영화 <갈증>은 그런 그의 시선을 매혹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고백>을 감상한 사람은 나카시마 테츠야가 얼마나 모호함을 사랑하는지 알 것이다. <고백>의 엔딩은 모든 게 완성될 수 있었던 순간에 감상자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후려갈기는 형식이었고, 그가 모호함으로 캐릭터를 완성시킨다는 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그런 성향은 <갈증>에서 더 확실한데, 아키카주(야쿠쇼 코지 분)가 카나코(코마츠 나나 분)를 성폭행하는 원작의 설정을 목을 조르는 것으로 바꿔, 아키카주에게 모호함을 주입함과 동시에 작품의 성격을 바꿨다. 그는 원작과 다른 주제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호함을 이용한 것이다. 인간을 알 수 없는 존재로 파악하는 영화로 일관된 그의 필모그래피를 고려할 때, 원작 속 성폭행 사건을 자신이 파악한 인간이란 존재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갈증>이 추구하는 건 악마 카나코의 화려한 살육처럼 뻔한 비주얼, 미스테리가 아니라 깨진 유리마냥 미쳐버린 세상이다. 이는 플래쉬백 기법을 남발하며 현실과 과거의 경계를 모호하게 몽타주 처리한 것에서 즉시 파악할 수 있는데, <갈증>에서 퍼즐을 푸는 듯한 쾌감을 느끼기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갈증>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정당한 동기를 지니고 움직이는 이가 거의 없다. ‘카나코 월드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동일시하는 내레이션을 통해 설득력을 요구하지 말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그런 영화에서 추리의 쾌감을 느끼길 기대하는 건 옳지 않다. 깨진 유리를 원래대로 맞춘다 생각해보시라. 눈에 보이지도 않는 파편이 사방에 흩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할 터. 그 좌절이 <갈증> 속 추리와 몹시 닮았다.

 

  깨지기 전 유리와 깨진 후의 유리는 같지만 다른 존재. 그걸 다시 짜 맞추려 한다면 파편을 찾아 헤매는 추격이 필요하다. 그래서 <갈증>의 극단적 사건들은 추격에 가까운 형태를 지니고 있다. 다가가려 할수록 멀리 도망치는 카나코의 잔상이 아키카주의 미친 추격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좀비처럼 추격해서 깨진 조각들을 채워넣으니 아무것도 없는 하얀 설산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공허함 그 자체다.

 

  만화 <몬스터>를 읽어본 사람은 카나코와 요한을 겹쳐보게 될 것이다. 다만, 카나코는 사랑스러운 외모와 악마적 눈빛뿐 아니라 여성이란 강력한 무기까지 지녔다. 그녀는 그 어떤 계획조차 없이 주변 이들을 이상한 나라의 카나코에 가두어버린 존재.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세상이 그녀를 찬양한다. 그런 카나코가 사라짐과 동시에 이상한 나라가 함께 붕괴했다. 잔혹한 신체 훼손 장면을 동반한 살육 장면은 그 붕괴를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며, 붕괴의 여파는 경찰과 야쿠자에까지 미쳤다. <갈증>이 추리 요소를 지닐 수 없는 이유엔 이 카나코란 인물이 허상에 가깝다는 것도 있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 압도적 존재를 숭배하는 법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추리한다는 건 어불성설. 이는 신을 현세에 데려와 증명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갈증>을 통해 너희는 원래 미쳐있었다.’라고 말한다. 카나코는 아버지의 폭행을 겪고 악마성에 눈을 뜬 게 아니라 원래부터 악마였다. 이미 아버지인 아키카주부터가 악마적 성향을 띠는 인물이었고, 불륜을 저질러놓고 당당한 어머니 키리코 역시 정상적인 인물이 아니다. 그런 이들 사이에서 악마가 탄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분명히 (카나코의) 세상은 원래부터 미쳐있었다.

 

  다만, <갈증>이 원작의 설정까지 바꿔가며 추구한 모호함 덕에 묘한 슬픔이 남는다. 공허함의 설산에서 내 손으로 죽여야 해라고 중얼거린 아키카주의 태도가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 아버지로서 어떻게든 그녀의 흔적을 찾아보려는 거라면, 아키카주의 다시 시작하고 싶어란 바람은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 된다.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남성에게 가한 응징은 아내를 진심으로 사랑해서고, 카나코에게 저지른 폭행 역시 사랑하는 딸에게서 악마성을 보았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이런 해석이라면 <갈증>의 원동력이 되는 핵심 소재는 부성애다. 가정 불화가 시작된 이유를 서술하지 않은 것도 이런 고민을 던져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모호함을 한쪽으로 정리하는 건 나카시마 테츠야의 의도에 반하는 해석 방법이긴 하지만, 그래도 부성애만큼은 믿어보고 싶어질 정도의 강력한 영화라 도리가 없다. 카나코를 죽이려 했던 손의 감촉이 카나코와의 마지막 기억이라며 떨던 아키카주의 모습에서 억지로 부성애를 찾아본다. 아니. ‘戀情연정이어도 좋으니 따뜻한 무언가를 갈구한다. 그가 설산에서 분노라는 이름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고 믿고 싶다.

 

  모든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갈증은 계속된다. 인간의 갈증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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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베리알 2015.01.22 16:52 신고

    뭔가 토미에스러운 느낌이 나는 영화 리뷰로군요.
    게다가, 고백의 감독 작품이라니 궁금증이 텍사스 소떼처럼 몰려 옵니다! ^^

  2. 손님 2015.01.22 17:51 신고

    세 작품을 다 본 사람으로 신작이 관심이 가는 데
    과연 이작품은 어찌 다가올지.....

    끔직하다는 평이 있던데 말이죠 제가 감담을 할지.....

    그나저나 시모츠마 이야기(불량공주 모모코)는
    블루레이 정발이나 됐으면 좋겠는데 통 소식이 없으니..

    그리고 소설 속편도 재미있던데 그건 어찌 영화화가 안됐는지
    이해가 안되요

  3. BlogIcon 마시마로 2015.01.23 22:27 신고

    그 모호함이 가나코라는 존재에 신비성과 잔혹함이 더 부각되게 하고, 비정상적 행동을 일삼는 거의 모든 캐릭터에 대한 기묘한 정당성이 부여되는 효과를 주고 있죠. 감독은 장 콕토의 문장을 영상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모호하고 과도한 연출을 하지 않았나 싶네요. 그런 면에선 정말 잘 표현한 연출이지만 역시 이러한 이야기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분에게는 역겨움이 먼저 올라오는 게 당연하다고도 봅니다. 근데 전 괜찮게 봤거든요. 나카시마 테츠야가 어떻게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고백>과 더불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니깐요.

    • BlogIcon 즈라더 2015.01.25 11:48 신고

      묘하죠. 애초에 있을 수 없는 존재를 쫓다보니 그 주변 인간들의 설득력 부족한 행동들이 정당화되는 황당한 상황.

      나카시마 테츠야는 대체 어떤 정신 세계를 지니고 있는 걸까요..

  4. 2015.12.25 08:47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