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를 '만물의 영장'이란 단어가 대답해준다. 일종의 조직폭력배. 세상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조직을 만들어 지구에 폭력을 가하는 존재. 여기서 지구란 '인간' 역시 포함한다. 자신이 속한 종족을 '영장 중의 영장'으로 만들어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고자 인간끼리 서로 싸운다. 그래서 지구 역사상 유례없을 살육 포식자고, 언젠가 '지구'라는 별조차 잡아먹을지 모를 공포의 존재다.

 

 만화 <기생수>를 보면, 기생동물인 오른쪽이가 "악마라는 게 있다면 그건 인간일 것이다"라는 말을 한다. 분명히 맞는 말이다. 각종 종교가 지옥과 악마를 표현한 내용을 살펴보면,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역사 속 끔찍한 장면과 연결되어 있다. 지옥과 악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종교에 헌신하는 이도 있다는 것에서 어느 정도 증명된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지옥과 악마가 무서울 리 없다. 그저 진화, 퇴화를 거듭했을 만큼 장대한 시간 동안 벌였던 살육의 역사를 지옥과 치환해서 생각했기에 무서운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가장 무서워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인 셈이다.

 

 그렇게 만물의 영장이라며 육지를 지배해온 인간. 그러나 인간이 지구에서 아직 지배하지 못한 곳이 있으니, 바로 바다다. 그런데 바다엔 인간과 거의 흡사한 존재가 있었다.

 


 사랑스러운 외모로 인기가 있는 범고래. 아주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인간을 공격하지 않아서 많은 사람이 신기해하는 존재다. 인간에게 그토록 착한 범고래가 바다를 쓸어담는 살육자라는 사실이 놀라운데, 범고래가 바로 바다에서 인간의 역할(?)을 수행한다.

 

 범고래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수천 년에 걸쳐 인간의 기록에 종종 등장할 만큼 쉽게 접할 수 있는 동물이고, 과학이 극도로 발전해있는 지금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 그간 파악했다고 여겼던 것들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된다. 심지어 인간은 범고래가 '멸종 위기 동물'인지 아닌지 역시 확실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자주 접하는 만큼 연구 기간도 길었 을텐데, 아직 무엇 하나 확실하게 정리할 수 없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세계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서로에 대해 파악하기 쉽지 않았던 인간과 매우 흡사하다.

 


 근래 범고래에게 부족 개념의 '종족'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모든 동물이 마찬가지겠지만, 범고래의 경우는 인간이 그런 것처럼 아주 광대하게 분할되어 있고, 신체 구조 역시도 미세하게 달라서 '완전히 같은 범고래'로 봐야 할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게 범고래를 멸종 위기 동물이냐 아니냐를 정할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인간이 대충 흑인, 백인, 황인으로 나누어지다가 근래 유전학적으로 그 안에서 또 엄청나게 갈라진다는 걸 알게 된 것처럼 범고래 역시 환경과 먹이의 종류에 맞는 다른 특색의 종족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심지어 언어 역시 지역마다 다르다고 한다. 일부 지역은 아예 '부족 사회' 상태를 수백 년 동안 이어왔다는 주장도 보인다. 만약, 바다란 공간이 아니었다면, 범고래는 이미 국가를 세우고도 남았다. 

 

 보통 범고래의 아이큐를 70~90 정도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건 아이큐 측정 기준이 인간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인간의 언어를 할 수 없는 구강 구조와 손발이 없다는 한계, 바다와 육지의 공간적 차이 등을 생각해볼 때, 인간 기준의 아이큐 측정 방식으로 범고래의 아이큐를 측정한다는 건 우스운 일이며, 오히려 그런 한계를 지닌 상태에서 아이큐가 70~90으로 나온 게 충격적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기준임에도 어린아이 수준의 아이큐가 나왔다는 건, 어쩌면 범고래가 인간보다 지능이 뛰어난 존재란 증거일 수 있다나.

 

 범고래가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강력한 존재를 단체로 작전을 짜서 살육하는 모습도 인간과 닮았다. 인간 역시 호랑이나 사자처럼 신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존재를 단체로 혹은 도구를 이용해 잡지 않던가. 신체 구조 탓에 도구를 사용하진 못하지만, 범고래의 향유고래 사냥이나 육지 혹은 공중에 있는 동물을 사냥하는 창조적 방법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로 인간 못지 않은 (혹은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의 존재란 주장에 귀가 팔랑거리게 된다. 특히 백상아리를 정면으로 공격하지 않고 측면으로 공격해 뒤집은 뒤 간만 빼먹은 범고래의 사례는 특정 어류의 '특성'과 '맛있는 부위'를 정확하게 알고 완벽히 노려서 사냥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렇게 지능이 뛰어난 존재니 연구가 쉽지 않은 것도 이해간다.

 


 바다의 생물에게 범고래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사로잡아 노리개로 삼을 때마저 있다. 이리 던졌다 저리 던졌다 하면서 데리고 놀다가 대상이 죽자 먹지 않고 내버려두고 떠나는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인간이 포경 행위를 하는 걸 단체로 도와준 적도 있다. 이건 다른 종의 고래를 '같은 부류'로 보지 않고 그저 '먹잇감'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기에 더 충격적이다.

 

 범고래는 인간처럼 위선적이다. 동물을 신나게 잡아먹어 놓고 이제 '멸종 위기 동물'이 되었으니 더는 사냥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인간처럼 그들은 개체 수가 지나치게 적은 고래를 잡아먹지 않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범고래는 다른 고래들을 일종의 '관리 대상'으로 보지 같은 부류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개체 수가 지나칠 정도로 많아 생태계에 악영향이 있을 법한 고래의 새끼를 집중적으로 죽이거나 잡아먹어서 생태계 밸런스를 맞춘다고 한다. 이런 범고래의 '위선'이 놀라운 고래의 수명이 인간 못지 않게 길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체수'를 파악하고 '관리'하려면 '기록'을 필요로 한다. 범고래가 어딘가에 기록을 남기고 있을 가능성은 많지 않고 (물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범고래 정도의 지능이라면 기록을 하고도 남는다. 신체 구조와 바다라는 환경의 특성 때문에 불가능에 가까울 뿐이지.) 철저하고 또 철저한 교육으로 다음 세대에 정보를 넘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교육은 대부분 '언어'로 이루어질 터이다.

 

 정말 인간과 많이 닮은 존재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란 착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건 범고래가 바다에만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동시에 범고래가 바다의 포식자, 관리자가 될 수 있었던 건 인간이 육지에만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신비로움, 흥미진진함, 공포가 한꺼번에 느껴지는 범고래의 모습. 우주 과학 못지 않게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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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 베리알 (2015.04.20 13:51 신고)

    인간은 이미 우리가 시대 구분을 하는 기원 이전부터
    최종 포식자로서의 위치에서 지나치게 번성했다고 하지 말입니다.
    결국, 지금처럼 인류가 득시글 대는 상황은 아주 이상한, 뭔가 정도(?)를 걷는 초존재가 있다면
    인류를 일부 쓸어서라도 바로 잡으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여기에 동물로서의 인간의 면모까지
    더해지면 쓸어서라도-가 아니라, 반드시 쓸어버려야한다고 할... ^^;;;

    만약에 지구에 대변동이라도 일어나 수생 환경이 된다면 과연 인류와 범고래는 어떻게 될까요.
    자연스러운 교배(!)가 이뤄질지, 유전학적인 퓨전이 이뤄질지, 아니면 서로 싸우던가
    그도 아니면 서로 손을 잡던가? ^^

    • BlogIcon 즈라더 (2015.04.22 09:53 신고)

      아마 지구멸망론이나 요한계시록의 내용도 일종의
      자기반성 같은 게 아닐까 합니다. 인간이 너무 번영하니까..
      피도 많이 흐르고 생물을 죽이는 것 정도야 일상다반사.
      생물을 죽이지 말라는 계율의 종교조차 미생물을 포함하지
      못하는 슬픈 현실이 드러났으니까요.

      불안에 벌벌 떤 결과물이 아닐까 해요.

  • BlogIcon RGM-79 (2015.04.20 20:42 신고)

    뭐 전투요정 수중전용 짐(RAG-79)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지도 몰라염.

    이놈들이 집단 성범죄저지를 때도 인간과 매우 유사하게 처리한다해서 놀랐네요.
    인간을 안 건드는 이유는 거의 고수급 맹수들의 공통점이라..
    다른 맹수들은 그래도 덤비긴 하는데
    범고래는 인간이란 하찮은 게 뭔가 쥐면, 떼로 모이면 어찌 되는지 확실히 교육받은 케이스라 하더라구요.
    뭐, 먹어봐야 맛도 없다는 면도 작용하였다지만.

    • BlogIcon 즈라더 (2015.04.22 09:54 신고)

      망 보는 놈도 있고..
      나중에 걸리면 다른 범고래에게 척결당하는 일도 있다 합니다.
      무시무시한 애들이에요. 정말 인간 같달까.....-_-;

  • BlogIcon 손님 (2015.04.21 12:12 신고)

    인간과 범고래가 같은 공간에서 생존했다면
    아마 범고래는 예전에 멸종했겠죠
    부족한 면이 많지만 인간이란게 참 독특한
    포식자의 종결자 수준이라,,,,,

    거기다 잔인무도하기는 둘째면 서러울 정도니
    어찌보면 인간이 육지에만 살게된게
    지구의 생명이 멸종되지 않은 중요한 이유라
    봅니다 살았다면 아작났겠죠
    절대 지금의 모습은 아닌,,,,

    근데 내가 살고 있는데는 닭의 좀비왕국
    이라는 비극의 아이러니 T T

    • BlogIcon 즈라더 (2015.04.22 09:59 신고)

      범고래도 만만치 않은 존재라서.....
      아마 인간과 함께 육지에 있었다면, 육지에 맞는 몸으로
      진화했을 테고, 그 정도 지능이면 진즉에 도구도 만들었을 테고..
      뭐 그렇습니다. 전 범고래에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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