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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훈련소에서 교관이 해준 '미담'이 있다. 과거 수류탄 훈련에서 훈련병 중 한 사람이 실수로 핀을 뽑은 채 수류탄을 놓쳤다고 한다. 이를 본 어느 교관이 떨어진 수류탄 위를 몸으로 덮어서 폭발을 최소화했다는 이야기다. 자기 목숨을 던져가면서 책임을 다하는 태도. 이 이야기를 해준 교관이 말하고 싶었던 건 "우리 교관들은 절대 너희를 포기하거나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러니 믿고 따르라."는 일종의 다짐이었을 터. 이는 더 나아가 전시에 상관을 믿으라는 의미를 지닌다.


 주장이든 다짐이든 간에 이 미담이 훈련병에게 먹히려면 하나의 조건이 필요하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상관의 의무를 직접 보여주는 것. 그런데 한동안 이 미담은 효력을 잃게 되었다.



 지난 13일,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을 일으킨 최모씨가 '점사'를 했다는 것 때문에 '총기 점사 사건'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을 만큼 계획적 범죄였음이 드러났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건의 책임자인 장교가 도망쳤다는 게 알려지면서 네티즌의 맹비난을 받고 있다.


 이해해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옳다. 갑자기 일어난 총기 사건에 죽지 않으려고 도망친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 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의 이야기고, 공적인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책임회피다. 아군에게 총을 쏜 순간부터 가해자 최모씨는 '적'으로 간주하며, 담당 장교가 그의 행동을 막지 않고 도망친다는 건 전쟁에서 도망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장을 책임지던 장교들은 추가 희생자가 나지 않도록 가해자와 전투를 벌이거나 최소한 다른 예비군들을 대피시키는 행동을 해야 했다.



 어떻게 그런 걸 요구할 수 있느냐,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라고 말하는 사람은 상황 파악이 안 된 것이다. 군인의 존재는 전쟁에 있다. 방어적 입장이건 공격적 입장이건 대한민국은 '휴전' 상태의 국가이며, 언제 어떤 순간에 전쟁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므로 직업 군인은 항시 전투에 대비해야 한다. 당장 북한, 중국, 일본 어느 한 곳이 우리를 공격한다고 치자. 무려 10초나 되는 시간 (총격 사건, 그것도 근접한 거리에서 벌어진 총격에서 10초는 어마어마하게 길다.) 동안 아무것도 못 하고 도망쳤던 직업 군인들이 과연 실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정상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엄청난 숫자의 징집병(우리들)을 지휘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사람의 처지에서 도망쳐서 살아난 것을 비난할 수 없다. 글쓴이 역시 도망쳤을 것이다. 그러나 도망친 이가 직업 군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살아 돌아와서 기쁘다'는 있을 수 있어도 '잘했다'나 '어쩔 수 없다'는 있을 수 없다. 왠지 이번 사건에서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아 일어난 세월호 참사가 다시 떠오른다. 구조 작업을 내팽개치고 우르르 몰려 도망치던 세월호 승무원들의 모습, 죽고 싶지 않아서 구조 작업에 임하지 않았다던 해경까지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는 소방 공무원이 불이 무섭다며 현장에 들어가길 거부한다거나 경찰이 범죄자에게 다칠까 봐 두렵다며 체포하지 않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세월호 사건은 정치적 이슈로 돌변해서 흐지부지되었지만, 이 일 만큼은 조금 더 다양한 시선에서 깊게 논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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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RGM-79 2015.05.15 18:50 신고

    그냥 사회가 낳은 또 하나의 피해자.. 이 이야기는 안나왔으면 좋겠네요. 가해자에게만 인권이 있는 나라라는 불쾌한 사실을 다시금 새겨주니까요. 맨날 사고터지면 군 특수성 어쩌구 하던 것들이 이젠 피해자들 세워놓고 알권리 운운하며 현장검증이라니(뭐 내부고발자보고 군인정신하던 놈이 돈 쳐먹고 기밀 팔더군요) 정말 심각한 건 현장검증건 같았습니다.

    지구연방군이 암만 썩었다, 썩었다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아닌가?

  2. 베리알 2015.05.16 07:08 신고

    제대로 된 대우를 해주고 체계적인 전투력 향상을 생각하는 일 없이,
    그저 그렇게 정신력, 군인정신이란 핑계로 남자들을 강제 징용으로 노예로 부려온 나라에서...
    직업 군인이 이 상황에서 저런 모습을 보였다는건, 사실상 전시 탈영이지 말입니다.

    그리고 일개 직업 군인의 영역을 넘어... 현역들을 노예로 아는 나라에서,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꿀을 빨며 예비군을 유지해오던 나라의 현실이 이렇게 또 드러난 거고...
    이런 상황에서도 재발 방지 방안으로 군기를 강조하는 한국군을 보면서
    진짜 이 나라는 뭔 일 나면 알아서 도망치는 수밖에 없구나...라는 걸 다시 확인했던 것 같습니다.

    애초 한국 군대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이 나라 군대에 기대도 안 하고 있긴 합니다만,
    위에서 RGM-79님이 말씀해주신 지구연방군이나 은영전 등 각종 미디어물에서 보여지는
    막장 군대의 모습들이 준수해 보이는 이 나라 군대 상황은 참...

    • BlogIcon 즈라더 2015.05.18 13:02 신고

      군의 수뇌부에게 있어서 징집병들은 그저 '값싼 노동력' 이상 이하도 아니겠죠. 수통 문제만 봐도 저놈들이 국민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어요. 그런 노예들이 죽어간다고 자기 목숨을 건다? 있을 수 없는 일인 거죠.

      아마 도망친 저 장교는 앞으로도 잘 살아갈 겁니다. 참..

  3. BlogIcon haru 2015.05.16 11:44 신고

    훈련소라면 훈련병의 실수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잇으니 대비를 하겠지만, 예비군이 저렇게 총들고 사고를 칠거라곤 예상을 미처 못 했겠죠.

    그러니, 거기에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웠고, 뭐 도망갔다는 것도 어느정도 이해는 합니다만.
    그 이전에 조교가 1인당 한명이 아닌 다수를 담당하고 있었는지는 이해가 안됩니다.

    • BlogIcon 즈라더 2015.05.18 13:06 신고

      전쟁은 원래 예상 밖의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 아닌가요?
      조교는 어차피 똑같은 징집병이니 상관없습니다.
      문제는 직업군인이죠.

  4. 손님 2015.05.16 23:13 신고

    일단 저 가해자는 절대 용서받을 수없는 범죄자죠
    계획적으로 저런 짖을 했으니 책임은 분명 따져야 한다고 봅니다

    듣자하니 저런 짖을 하면서도 유서에서 화장은 하지마라 그건 인권침해다 운운하며
    무서워 했다던데 참..... 그와중에 어찌 저리 이기적인지...

    다른 사람은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자기는 조금도 피해를 안보려는
    비겁하고 이기적인 싸이코패스라는....

    정말 저승에서 곱게 죽지마라 이 인두겹아

    그리고 책임자들은 철저히 법대로 처벌해야죠
    어영부영 넘어거면 안된다고 봅니다

    예상치 못한 건 이해해도 그냥 도망이라니 .. 욕 먹어도 싸죠

    개인적으로 군복무를 저 연대는 아니지만 저 사단 다른 연대 출신에 예비군 훈련을
    담당했던 경우라 참 더 씁쓸한.....T T

  5. BlogIcon 불친절한 천선씨 2015.05.18 22:27 신고

    저도 예비역 5년차인데, 그 전에 동미참 훈련은 다녀오긴 했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더 예비군 훈련년차가 많이 남아있는 분들께 심난해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OTL
    극단적으로 저질놓고 아무 죄없는 예비역을 무차별로 죽이거나 다치게한 가해자도 당연히 용서가 안될뿐더러 덤으로 과거에 군대에서 가해자를 괴롭힌 선임 또는 후임들도 제대후에 죄의식조차 잊어버린채 뻔뻔스럽게 사회에서 버젓이 활약한다는게 용서조차 안되네요. ㅇㅅㅇ

    • BlogIcon 즈라더 2015.05.21 14:54 신고

      뭐랄까, 이번 사태도 억지로 뭔가 만들어보려고 하는 군 수뇌부의
      뻘짓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구역질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