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인성이 문제라고 한다. 첫 번째 감염자가 자신의 증상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였고(정부, 병원, 당사자 가족의 말이 갈리고 있어서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증상을 보였음에도 홍콩으로 훌쩍 떠난 사람들도 문제였다고 한다. 격리 대상임에도 골프장에 놀러 간 사람도 있었다. 증상을 보였거나 자가 격리 대상자로 판정을 받았음에도 천만 단위의 인구가 몰리는 서울시를 가로질렀던 이들이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분명히 맞는 말이다. 이런 위험한 전염병을 몸에 안고 있거나 안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는 건 민폐다. 특히, 답답해서 혹은 놀기 위해 돌아다닌 사람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는 병이기에 일종의 '살인범'이란 표현에 반박하기 어렵다. 정부의 제정신 아닌 대응이 사건을 키운 것도 사실이고, 홍콩으로 여행을 떠난 두 여성처럼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해 도망친 것에 불과한 적도 있었을 테지만, 일부 감염자와 격리 대상자들의 안일함이 일을 키운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이 일을 자기 자신에게 대입해보자.



 격리 대상자가 되면 집에서 나갈 수 없다. 집에서 나갈 수 없다는 건 대다수 시민에게 '일을 할 수 없다'를 의미한다. 급한 프로젝트와 마주한 회사원이라 해도 느닷없이 회사에 나갈 수 없게 되며, 회사는 이를 '개인의 잘못'으로 몰고 갈 것이다. 차후 감사, 인사 과정에서 문책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그건 회사가 잘못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상다반사'다. 한국 사회에 적응(?)한 대한민국 회사원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비이성적인 생각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영업자는 훨씬 심각하다. 메르스 탓에 출근할 수 없더라도 월급이 나오는 회사원과 다르게 자영업자는 자신이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 특히 직원을 고용하지 않는 소규모 자영업자는 일을 안 하면 수입이 0이 되며, 자신의 영업점을 찾아주던 고객들 대부분이 떠날 수 있다는 부담까지 껴안게 된다. 메르스에 걸리지 않았다는 판정이 나거나 걸렸다가 치료되어 다시 일을 시작하더라도 자칫 주변에 메르스 관련 격리대상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또다시 고객이 급감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엔 이렇게 억울한 상황에 처한 이들을 돌봐주는 장치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메르스가 확산될 수록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숨기거나 자가 격리에 동의하지 않고 집을 떠나는 사람이 많아질 거라 생각한다. 현정부가 만들어놓은 이 사회가 자신을 절대 돕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루만 자가 격리 대상이 되어도 한 달 생활비가 나온다는 데 충분하지 않느냐고 묻는 이는 입장을 바꿔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물론, 일반 이 글을 읽는 이 가운데엔 일반 서민의 삶을 이해하려 하지 않거나 이해할 수 없는 입장에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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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 베리알 (2015.06.13 06:35 신고)

    현정부가 만들어 놓은 이 사회가 절대 돕지 않는다는걸 알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이 참 와닿지 말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나온지 몇년 된 정부에게 뭔 소리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솔직히 그런 소리하고 있으면 그걸 사람이라고 하기는 참...
    거기에 더해서, 메르스 걸렸다고 뻥치며 그걸 이용해 먹으려는
    역시 사람같잖은 녀석들 줄줄 나오는거 보면 일종의 환상의 커플이랄까...

    그저 이 지옥의 구렁텅이에선 나만 아니면 돼, 내가 아닌 척 하면 돼... 왜 이런 이상한 생각들이
    이상한 진심들이 가득한지, 생각할수록 그저 한숨뿐입니다.

    • BlogIcon 즈라더 (2015.06.14 16:57 신고)

      얼마 전까지 여기를 방문해줬었고,
      지금도 디피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어느 분은
      "정부의 정책에 직접 피해를 입은 거 아니면 비판하지 말라"
      라고 제가 조언(?)했었죠..

      어찌나 참담하던지.

  • 손님 (2015.06.13 10:50 신고)

    스스로 환자임을 알고도 일부러 민폐끼치는 족속은
    분명 잘못된 거지만

    지금의 정부나 보건당국은 말그대로 무능하고 무책임한 거죠
    그러면서도 아몰랑 그 자체로 일관하니....

    닭대가리는 무시하고 말그대로 복불복으로 살아야죠
    나만 아니면 되고 나만 잘살면 되는...

    • BlogIcon 즈라더 (2015.06.14 16:58 신고)

      오늘은 확진 환자가 격리 대상이 아니었던 게 밝혀져
      논란이네요. 아 클라스 한 번........

  • BlogIcon RGM-79 (2015.06.15 11:53 신고)

    정말 국개론이 틀린 말이냐 묻고 싶어지는 시절입니다. 아까 약국에 갔더니 삼성병원'만' 욕을 먹고 있더군요.

    • BlogIcon 즈라더 (2015.06.21 20:12 신고)

      국개론처럼 우리나라를 잘 설명하는 단어가 없다는 거, 이제 아는 사람은 다 알지 않던가요. -ㅅ-

  • BlogIcon haru (2015.06.16 05:00 신고)

    솔직히 엉망이 되어도 이렇게 엉망이 될 수 있나 싶을 정도입니다.

    • BlogIcon 즈라더 (2015.06.21 20:13 신고)

      이미 끝을 본 기분입니다.
      이 와중에 이미 비가 와서 물을 받은 논에 가서 물을 뿌리고 있는
      그네님의 행동을 보고 있노라니 끝이란 생각 밖에 안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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