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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리자드가 제작한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드레노어에 히틀러 같은 작자가 있다. 그롬 헬스크림이란 자다. 그는 드레노어에 살고 있는 오크들을 폭력으로 휘어잡아 '강철 호드'란 존재를 만들었고, 드레나이들을 생명 에너지의 원천으로 삼아 학살했다. 그는 그렇게 모은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아제로스를 침공하기에 이른다. 그런 그를 막기 위해 플레이어가 드레노어로 넘어가 싸우는 것이 <드레노어의 전쟁 군주>의 오프닝이다.


 처음엔 그롬 헬스크림을 잡기 위한 여정이 잘 진행되었다. 그런데 중간에 판이 뒤집힌다. 굴단이란 흑마법사가 그롬 헬스크림을 유폐하고 대족장에 오르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굴단이 악마와 연결되어 있는 데다 본래 아제로스를 포함한 전우주를 말살하려는 인물인 탓에 플레이어는 그롬 헬스크림과 손을 잡고 굴단과 대항해야 했다. 이른바 말하는 적과의 동침, 오월동주. 여기서 문제는 그렇게 힘을 합쳐 굴단을 무찌른 직후다. 그롬 헬스크림은 굴단을 막기 위해 결성된 아제로스와 드레노어의 연합군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드레노어는 자유다!"


 더 황당한 건 저 외침에 연합군이 환호성을 질렀고, 다른 네임드 캐릭터들 역시 딱히 반발하지 않았다는 거다. 이후, 그롬 헬스크림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팬덤으로부터 '그롬 공주님'이란 비아냥을 듣게 되었다. 드레노어 오크 역사상 최악의 학살을 저질렀던 그롬 헬스크림이 막판에 연합군을 조금 도와줬다고 순식간에 드레노어를 악마로부터 해방한 영웅이 된 것이다.



 역대급으로 훌륭한 확장팩이라고 불리는 <군단>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불거졌다. 워크래프트 사가에서 인기 캐릭터인 일리단 스톰레이지를 부활시키는 과정에 등장한 '제라'란 나루가 등장한다. 고위 나루로서 빛의 어머니라고 불릴 만큼 위대한 존재라 한다. 제라는 일리단 스톰레이지가 세상을 지킬 것이며, 그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것이라 밝힌다. 그리고 플레이어로 하여금 일리단 스톰레이지의 과거를 직접 체험하게 한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냥 단순히 일리단 스톰레이지의 과거를 체험하게 하는 거라면 좋겠는데 제라의 미친 코멘터리가 자꾸 달린다. 쳐들어온 악마를 막기 위해서 일리단이 부하 마법사들의 생명력과 마나를 흡수해서 죽인 뒤 그 힘으로 악마들을 처치하는 것에 대한 코멘트가 대표적이다.


 "어쩔 수 없었다. 너라면 어땠을지 잘 생각해보아라."


 이미 그렇게까지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소설을 통해 밝혀졌다. 일리단은 그저 자신만을 위해, 힘을 추구했을 뿐이다. 게다가 적을 막기 위해서 작은 것, 설사 그것이 생명이라 할 지라도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 방식을 고위 나루라고 하는 제라가 옹호하고 있다. 대의를 위해서 작은 걸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고 플레이어에게 주입식 교육을 펼친다. 심지어 과거 <불타는 성전>의 레이드에서 일리단을 죽인 적 있는 캐릭터로 플레이하면, 플레이어를 향해 '타락했다'고 욕설을 퍼붓는다. 참고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세계관에서 나루는 절대적 선이자 빛 그 자체다. 옳지 않은 생각방식을 허용하지 않는 종족이다.


 혹여 나루가 타락한 것일 수 있지 않느냐(타락 덕후 블리자드)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테고, 실제 제라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이런 의견이 많았다. 아무리 블리자드가 그롬 헬스크림이란 희대의 망캐릭터를 만들었어도 설마 제라까지 그렇게 만들겠느냐는, 어쩌면 타당하고 당연한 의견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현시점까지 제라가 타락한 나루라는 근거가 보이질 않는다. 일리단 스톰레이지가 부활하는 7.2 패치의 베타테스트에서도 그런 내용이 보이지 않는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나루가 타락하면 공허의 군주로 변한다. 즉, 타락했는데 플레이어가 못 보는 것뿐 아니냐는 주장은 의미가 없다. 하얗게 빛나던 게 새까매지는데 모를 래야 모를 수 없다.



 100보 양보해서 제라 문제는 앞으로 두고 볼 필요가 있다고 치자. <군단>에서 문제 일으키는 캐릭터가 또 있으니 수라마르의 탈리스라다. 고위 귀족이자 수석 비전술사라는 높은 위치에 있었음에도 독재의 억압을 타파하고 악마와 손을 잡으려는 지도부를 막으려다 죽을 위기에 빠진 캐릭터로, 플레이어와 함께 수라마르를 독재로부터 구재한다는 놀라운 설정을 지니고 있다. <군단>이 게임 평론 사이트들로부터 어마어마한 호평을 얻은 것에 이 탈리스라와 수라마르 스토리가 아주 큰 역할을 했다고 할 법하다. 그러나 그런 탈리스라가 이런 대사를 한다.


 "그들은 기꺼이 우리의 대의에 동참할 거에요."


 여기서 탈리스라가 말하는 '그들'이란 본래 탈리스라와 동족이었으나 밤샘 마력에 중독되어 좀비가 되어버린 '메마른 자'다.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치료제가 나오지 않는 한 그들이 자신의 의지를 말할 능력은 없다. 그런 그들을 마법으로 조종해 병력(이라 말하고 총알 받이라 해석한다)으로 쓰고 있는 게 탈리스라와 플레이어. 수라마르 퀘스트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탈리스라의 성격을 고려할 때 "그들을 동의도 없이 병력으로 쓰는 건 죄악이죠. 언젠가 저도 그 대가를 치루게 될 거에요."라는 대사가 적절한데도 위와 같이 '대의'를 부르짖고 있다.


 요새 안 그래도 민족주의, 국가주의, 애국주의에 전세계가 열광하고 일부 국가는 파쇼즘을 향해 차근차근 걸어가는 지경이라 답답해 죽겠는데, 언제나 그런 것들을 혐오하는 스토리로 게임을 만들었던 블리자드가 대의를 부르짖고 앉아 있으니...... 즐기기 위한 게임에서도 이런 불편한 스토리를 맛봐야 한단 말인가? 근래 블리자드를 창업했던 주력 맴버들 중 상당수가 회사를 떠나고 스토리 작가들도 대거 교체되는 등의 내부적 문제를 겪고 있는 블리자드. 혹시 이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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