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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가 일본 아카데미를 휩쓸었다는 소식에 누군가가 '<분노> 수준의 영화가 아카데미를 휩쓴 건 지금 일본 영화계의 수준이 한심하단 증거다.'라고 했다. 이 개인의 평가가 절대적일 리 없음에도 뇌리에 박힌 건 실제로 지금 일본 영화계가 개판이기 때문이다. '사실'을 끄집어내 절묘하게 이용한 단평. 덕분에 난 <분노>를 보기 전 이 영화에 대한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었고, 이는 영화를 볼 때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분노>는 때론 독하고 때론 달콤하며 때론 슬프고 때론 무섭다. 여러 인간 군상을 직렬이 아닌 병렬 방식으로 조립해, 의심이 사랑과 연결되었을 때 느끼는 (사람마다 다를) 감정을 교차편집으로 수놓았다.



 <분노>는 모호함의 결정체다. 일반적 일본 영화와 다르게 <분노>의 등장인물들은 감정 과잉이란 실수를 절대 저지르지 않는다. 이른바 말하는 설명충도 없다. 철저하게 순간의 분위기와 직접적이지 않으면서 자세한 대사로 무리수없게 스토리텔링한다.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담백함이지만, 정교한 교차편집과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다.


 개성이 강하다 못 해 독한 인물이 한가득이라 의심을 표현하는 방식과 그 결과가 다르다. 배우들이 완벽한 연기를 해내지 않으면 처참한 결과가 나왔을 텐데, <분노>엔 아직 어린 히로세 스즈까지 포함해도 연기구멍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강렬함을 담고, 미세한 눈동자 움직임 하나조차 연기의 영역에 포함시키는 퍼포먼스로 미스테리란 포괄적 장르가 다른 장르에 묻혀 이탈하지 않도록 붙들어맸다.


 뜻밖에도 <분노>엔 사회적 약자의 한숨이 서려있다. 영화의 결정적 계기를 제공하는 인물 모두가 사회적 약자. 이곳저곳에서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걸 느끼다가 기어이 가족 혹은 친인마저도 편견으로 바라보는 것을 깨닫는다. 그에 대한 사회적 약자의 반응은 이렇다.


 "아이코라서?"


아이코라서?


 <분노>는 복잡한 결론을 낸다. 아름다워서 울고 분해서 울며 좌절해서 운다. 행복해서 웃고 허탈해서 웃으며 놀라워서 웃는다. 이 다채로운 감정의 간극을 완벽하게 연출해낼 감독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이상일 감독은 그 중의 하나임이 틀림없다. 그가 <분노>로 세계적 영화제를 모조리 휩쓸었다는 소식이 들려도 '당연히 그렇겠지..'라고 넘길 수 있을 만큼 놀랍다.


뱀다리) OST가 정말 아름답다. 오랜만에 크레딧을 끝까지 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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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olaris 2017.05.30 00:37 신고

    일본 영화계가 얼마나 개판이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