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우먼>의 예고편을 보고 '참 재미없겠다'고 느낀 탓에 꼭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감정이 없었는데, 하도 호평이 난무하기에 홀린 듯이 이끌려 극장을 찾았다. 그 결과물은 나름대로의 만족.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했다는 점이나 히어로의 '시작'을 다뤘다는 점에서 마블 쪽의 <퍼스트 어벤져>와 비교하곤 한다만 <원더우먼>과 <퍼스트 어벤져>는 완전히 다른 경향의 영화다. <퍼스트 어벤져>는 홍보용 인형이 진짜 영웅으로 변하는 과정을 훌륭하게 전개하다가 스티브 로저스가 팀을 구성하는 순간부터 의미없는 단순 나열의 '연대기'로 변신하는 바람에 약간(사람에 따라 심하게) 망가졌다면, <원더우먼>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 모르는 데미(?)갓에게 '인간'을 가르치는 스티브 트레버의 이야기로 원더우먼 즉, 다이애나 프린스의 청순 브레인에 인간의 숨을 불어넣는 영화다. 두 영화의 닮은 점은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하면서 실제 역사를 살짝 비켜가는 꼼수를 썼다는 것 정도.  

 그런 전개 방식을 택한 탓에 <원더우먼>에서 스티브 트레버의 역할은 타이틀롤인 다이애나 프린스보다 훨씬 중요했고, 이를 크리스 파인이 완벽하게 해냈다. 악당신을 죽이면 모든 게 끝날 거라 믿는 순진무구에 성선설을 외치며 인류를 감싸안으려는 다이애나가 스테레오 타입으로 극을 단순하게 하려는 순간, 스티브 트레버는 세상풍파 다 겪은 꼰대의 '제한 있는 정의'를 데려와서 극을 풍부하게 한다. 가선 안 되는 길로 날아가려는 원더우먼을 스티브 트레버가 계속해서 끌어내린다는 의미다. 유머를 소화하는 방식부터 임팩트를 남겨야 할 감정 연기까지 '과잉'과 '부족'이란 단어가 보이지 않는 크리스 파인의 스티브 트레버는 현실과 비현실 양쪽에 다리를 꽂아넣고 움직이지 않으며 영화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한다.

 (아마존 사람 기준에선) 꼰대처럼 느껴질 크리스 트레버 덕분에 이 단순한 스토리의 영화가 재미있을 수 있었던 셈이다. 물론, 이 또한 시나리오의 영역이자 연출의 영역이므로 이렇게 만들어낸 제작진의 공이 크다 하겠다. 어쩌면 갤 가돗의 한심한 연기력을 크리스 파인으로 감추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은 걸지도 모른다.



 한편, <원더우먼>의 액션은 썩 좋지 않다. 유일한 성공이라 할 부분은 다이애나 프린스가 처음부터 자신의 능력에 눈을 뜨는 게 아니라 전투를 벌이면서 천천히 알아간다는 걸 잘 표현했다는 점 정도. 이 외엔 인상 깊은 결과물이 없다. 참호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액션씬이 볼만하지만, 강렬한 갤 가돗의 몸놀림에 감탄사가 나올 뿐이지 액션 연출 자체는 굉장히 어설프다.

 많은 이의 예상과 다르게 <원더우먼>의 액션 연출에 잭 스나이더가 직접 참여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껏 해봐야 아이디어 제공이나 일부컷의 검수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그 만큼 액션 연출의 완성도가 그리 좋지 않고 합의 반복도 좀 잦은 편.

 클라이막스의 액션에도 다소 문제가 있다. 이게 제작비의 문제인지 연출의 문제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다이애나 프린스가 울컥해서 뒤엎어버리는 장면을 제외하곤 전체적으로 캐릭터들이 따로는 경향이 있다. 크리스 트레버의 미션과 다이애나 프린스의 미션이 교차편집으로 보여짐에도 거기에 스릴이나 쾌감이 없다. 이는 다이애나 프린스의 액션에 집중하느라 크리스 트레버의 미션에 제대로 된 위기를 집어넣지(연출하지) 못 하고 단순화하면서 생긴 문제다. 게다가 다이애나 프린스가 하늘로 뛰어올라 필살기(?)를 사용할 땐 어설픈 전신샷 때문에 유치찬란하게 느껴질 수 있다.



 <원더우먼>은 사이드킥마저 매혹적일 만큼 감정적으로 즐거운 영화란 장점과 어설픈 액션이란 단점이 뒤섞여 무조건 극찬하기 어려운 영화로 탄생했다. 물론, 그럼에도 이만하면 충분히 즐길 만한 대중적 여성 히어로물이란 생각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처럼 컬트화되어 소수에게 열광적 지지를 얻는 유형은 확실하게 아니니 극단적인 결과물이 나왔을까봐 걱정할 필요 없다.

 참고로 <배트맨 대 슈퍼맨> 감독판을 먼저 감상하면, 다이애나 프린스의 '신'적인 액션에 당황하는 일이 줄어드는 데다 BGM에 전율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배트맨 대 슈퍼맨>은 호불호가 극단적(7할은 불호쪽)으로 갈리는 영화니 주의. 본다면 꼭 감독판으로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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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베리알 (2017.06.04 22:53 신고)

    마블化로 가는 DC...인가하는 불안감에
    어쨌거나 보러가긴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는데, 역시 현실의 벽이... T T

    평들이 의외로 좋아서 더 불안하긴 합니다.
    제가 좋아하던 그 DC 영화의 분위기가 많이 희석되어 버린 건지 어떨지...

    • BlogIcon 즈라더 (2017.06.16 16:42 신고)

      마블화로 가고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꼬질꼬질 묵직묵직을 추구하던 DC의 영화와 상당히 동떨어진 느낌이었어요.

      그걸 봐줄 만큼의 재미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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