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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녀>는 과잉이 문제다. 가열차게 불타오르니 그럴싸하게 엮여야 할 인과에 신경쓸 시간이 있겠는가.

 <악녀>엔 액션이 장기인 감독이라는 걸 어필하려고 무리를 했다고 할 법한 롱테이크 액션들이 가득 담겨 있다. 그냥 연출했어도 충분했을 액션을 핸드헬드 롱테이크로 찍으니 그게 멋진 건지 정신없는 건지 모르게 된다. 곡예에 가까운 움직임이 가득한 액션을 롱테이크로 연결한 게 신기해서 액션이 잘 만들어졌다고 현혹될 수 있는데, <악녀>의 액션은 기본적 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울 만큼  혼란스러울 뿐 좋은 액션이라 하기 어렵다. 배우와 스턴트맨만 잔뜩 고생하는 '나쁜 액션'의 표본이다. <아저씨>와 <우는 남자>의 액션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악녀>를 보고 새삼 깨달았다.

 이렇게 액션에 집중한 탓인지 매력적인 인간 관계가 재미없게 느껴질 만큼 엮는 방법이 어설프다. 주인공인 숙희(김옥빈 분)는 대체로 감정이 과잉되어있고, 대다수의 다른 인물들은 쿨병 말기 증세를 보인다. 여기에 유치한 대사 위주로 스토리텔링하니 오글거릴  수밖에. 여러 선배 영화가 뒤섞여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던데, 뜻밖에 딱히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그 얽히고 섥힌 관계를  묘사하는 방법이 한심했을 뿐.


김옥빈 얼굴이 이상해졌다. <박쥐>에서 그 강렬한 아름다움을 <악녀>에선 찾아볼 수 없다.


 <악녀>엔 시대상도 보이지 않는다. 대중문화는 시대상을 반영해야 제대로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유형의 선배 영화인 <아저씨>가 화려한 반전을 모셔둔 영화가 아니었음에도 인기를 끌었던 건 충실하게 시대상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악녀>엔 그런 게 없다. 배경만 한국일 뿐, 완벽하게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담은 것 같은 묘한 영화. 판타지 영화조차 시대상을 적극 반영해서 공감대를 만들어내는 세상에 이토록 완벽하게 격리된 이야기가 탄생할 줄이야.

 <악녀>는 액션 과잉을 없애고 각본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2시간 20분 정도 되는 영화로  나왔어야 했다. 비극을 향해 가는 '통로' 정도로 취급 당하며 어설프게 처리된 멜로 부분은 더욱 더 디테일하고 절절하게 시간을  들여서 묘사해야 했다. 그래야 공감대가 서고 후반부 액션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다. 슬프게도 <악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끔찍한 비극에서 약간의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한심한 결과물을 낳았다. 나이 들고 누선이 약해졌는지 시덥잖은 장면에서도 눈물을 쏟고 마는 내가 시큰둥하게 보고 있었으니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되새기면 되새길 수록 아깝단 생각이 든다.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들려주는 사람이 너무 어설퍼서 재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도 화자가 잘하지 않으면, 재미없게 느껴진다는 걸 깨닫게 하는 영화가 <악녀>다.

 그런데 왜 '악녀'지? 영화의 내용에서 숙희를 악녀로 볼 만한 구석이 없었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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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베리알 2017.06.11 09:36 신고

    아... 다른 평들 볼 때는 두리뭉실한 느낌이었는데,
    헨타이사마 평을 보니 뭔가 안개가 걷힌 느낌입니다.
    그래도 일단 기회가 되면 극장에서 보고 싶기는 하군요. ^^

    김옥빈은... 아는형님에서도 그렇고
    확실히 박쥐 때의 그 미모 느낌이 아니군요. T T

    • BlogIcon 즈라더 2017.06.16 16:52 신고

      김옥빈 비주얼 생각하고 보면 엄청 실망하실 겁니다.
      과잉이라곤 해도 볼 구석이 있는 액션이니 나중에 한 번 보셔요.

  2. BlogIcon 마시마로 2017.06.11 22:40 신고

    액션 동선은 괜찮게 나온 듯 한데 카메라 동선이 너무 흔들려서 뭐가 뭔지 알아볼 수 없어서 아쉽더군요.
    개인적인 느낌으론 흔들린다는 기분이 드는 <하드코어 헨리>보다 더 흔들려서 좀 어지럽죠.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이 차라리 조선족 시절만 부각시켜 1시간 50분 정도의 러닝타임을 상정해서 시나리오를 썼다면 지금보단 괜찮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아무리봐도 국정원 직원과의 "오글거리는" 로맨스는 영 아니올시다여서... 게다가 그 역할의 배우가 정말... 미친(?) 연기력을 보여주니깐 견딜 수 없었습니다. ㅎㅎㅎ

    • BlogIcon 즈라더 2017.06.16 16:53 신고

      흔들리는 게 왠지 장면과 장면을 연결해 롱테이크처럼 보이게 합성 작업을 하면서 의도적인 화면 뒤틈처럼 느껴져서 더 별로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