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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영화 수입사들은 대체로 편집 감독을 겸임한다. 그들에겐 영화란 게 '완성된 작품'이란 감각 자체가 없다. 이는 아주 유서 깊은 전통이라서 이제 고치려 해도 고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독재 정권 당시의 수입 영화 검열부터 시작해서 90년대 우후죽순 쏟아지던 홍콩 영화의 제멋대로 편집과 심의 완화를 위한 삭제, 블러 떡칠로 이어진 뒤 지금은 등급을 내려 돈을 더 벌고자 자체 편집을 단행한다. 그들의 기술력과 행동력 앞에 뤽 베송과 같은 명감독도 무릎을 꿇었다. (물론, 애초에 미리 알리지도 않고 편집했으므로 무릎 꿇는 것 말곤 방법이 없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를 붙여 편집 감독 역할을 맡은 것에 타당성을 부여하지만,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아주 순수한 자본주의 논리라는 걸.



 영화 <윈드 리버> 감독판이 개봉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전세계 어디에도 개봉하지 않은 감독판이 왜 한국에서 개봉하냔 의문이 뒤따랐고, 어느 시네필이 감독판이 아니라 오리지널판이란 사실을 알아냈다. 지금 극장에 걸려 있는 <윈드 리버>는 수입사인 유로 픽쳐스가 편집 감독 역할을 맡아 고뇌를 거듭한 끝에 장렬히 40초를 잘라낸 결과물이라고 한다. 감독판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의미의 감독판이 아니라 그냥 수입사의 편집이 들어가지 않은 오리지널 판본일 뿐이다.


 외국에서 감상한 뒤 한국에서 다시 감상한 사람이 없는 이상 이 사실을 알아내는 건 쉽지 않다. 사실, 황당하게도 유로 픽쳐스의 대표가 자백하는 형식으로 확인되었다.



현재 극장에 걸린 '윈드리버'는 테일러 셰리던 감독이 내놓은 인터내셔널 버전이자 원안이다. 수입배급을 맡은 유로픽쳐스가 수입을 결정했던 시나리오와 가장 가까운 버전인 셈. 111분4초 분량인 '인드리버' 개봉 버전은 그러나 본래 인터내셔널 버전에 비해 약 40초 분량이 편집됐다. 수입사와 영화를 제작한 와인스타인컴퍼니-테일러 셰리던 감독의 3주에 걸친 논의 끝에 결정된 사안이다.

수입배급사 유로픽쳐스의 이재진 대표는 "희생자를 집단으로 폭행·강간하는 장면이 노골적으로 들어가 있었다. 10번을 봤으나 그 집요함이 불편했다"며 "와인슈타인 측과 감독 모두에게 한국의 배급자로서 이메일을 보내 이 장면이 없어도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가편집을 보고 판단해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3주 간의 지난한 논의와 설득을 거쳐 그런 의미라면 편집을 받아들이겠다는 와인스타인과 테일러 셰리던 감독의 승낙이 떨어졌고, '윈드리버'는 현재의 모습으로 한국에서 개봉할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인터내셔널 버전에서도 일부가 편집된 한국만의 개봉 버전이다. 편집 결과 영화는 15세관람가 버전을 받아 개봉했다. - 스타 뉴스 -



 <윈드 리버>의 반응이 좋아서 감독판이란 이름으로 한 번 더 내놓으려니, 한국에서만 감독판이 개봉한다는 사실에 당황한 시네필의 반응이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마치 자신의 행동이 타당하다는 듯한 당당한 인터뷰. 여성들은 근거가 없더라도 자신감 있고 당당한 남성에게 끌린다고 한다. 이재진 대표는 아마 여성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다. (당연히 사바사. 근거가 없는 소리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옳고 그름과 별개로) 수입사에게 영화를 편집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유로 픽쳐스는 아주 개념 있는 회사라서 고맙게도 감독을 직접 설득한 모양이다. 해당 장면이 '불편했다'는 이유로 감독, 배급사와 3주에 걸쳐 편집을 논의했다고 한다. 감독이 각본을 탈고할 때 없애지 않은 씬인 데다 어렵고 위험한 씬이라서 고심 끝에 촬영했을 테고, 불편함을 느끼는 관객이 있을 걸 알면서도 중요한 장면이기에 최종 편집에서 자르지 않은 것을 일개 수입사가 불편하다고 주장하며 논의를 요구했던 것이다. 감독이 동의했으므로 이건 수입사에 비난을 가할 문제가 아니란 주장을 하고 싶다면 '3주에 걸친 논의'에 주목하시라. 3주 동안 거부했음에도 끝까지 강행하겠다고 주장하는 수입사를 보며 테일러 셰리던 감독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제작사인 와인슈타인이 반대해서 3주나 걸렸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와인슈타인 역시 다른 나라의 영화를 수입할 때 지들 멋대로 편집하는 바람에 라스 폰 트리에 감독에게 "내 영화를 망쳐놨다"며 비웃음을 당한 바 있고, <설국열차>를 수입할 땐 봉준호 감독에게 20분 삭제를 요구하기도 한 종족이다. 봉준호 감독이 끝까지 반대해서 오리지널로 개봉하게 됐지만, 와이드 릴리즈 예정이었던 걸 대폭 줄여서 개봉해 완벽하게 복수한 영화사다. 지들과 똑같은 짓을 하겠다는데 반대할 명분이 부족하지 않겠나. 즉, 거부한 주체는 감독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니들이 로컬라이징한 포스터는 안 써.


 가슴을 쥐어잡고 자기 뼈를 깎는 심정으로 눈물 흘려가며 40초를 잘라낸 유로 픽쳐스에도 나름대로 생각은 있다고 봐야 한다. <킬러의 보디가드>가 삭제를 거쳐서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 물론, <킬러의 보디가드>가 성공한 원인에 삭제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교차 검증이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확신할 수 없지만, '저들'의 생각으론 그게 결정적 한 방이라고 판단한 게 분명하다.  등급을 낮추기 위해 삭제한 <킬러의 보디가드>와 <윈드 리버>는 사례가 다르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삭제했을 거라 생각하기 어렵다.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에서 청소년관람불가가 나올 법한 장면을 잘라냈다. 즉, 15금을 받아내서 돈을 더 벌어보려고 한 게 진짜 이유란 생각이다. 만약, 불편해서 잘라냈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건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다. 감독도 아닌, 직원들의 '개인적 사상' 혹은 '개인적 감상'을 기준으로 '검열'을 한 거니까.


 가끔 이런 식의 삭제 개봉이 정당하다거나 이해할 수 있다는 사람이 있는데, 소비자가 제품의 하자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며 구매해야 한다는 논리는 조금 이상하다. 오리지널을 멋대로 가공한 시점에서 심각한 하자가 생긴 상품이 된다. 그런 하자가 있는 줄도 모르고 구매한 소비자가 저들을 이해해줘야 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만 원 주고 산 과자의 99%가 질소고 과자는 딸랑 하나만 들어있어도 이해해줘야 한다는 게 되고, 키보드의 키가 몇개 없어도 이해해줘야 하는 게 된다. 더 많은 이익을 남기려고 그런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니까. 혹여,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주변 사람에게 '호구'라는 말을 종종 들을 텐데, 좋은 의미의 단어가 아니므로 꼭 화를 내도록 하자. 물론, 팩트 폭격이라 화를 내봤자 누워서 침 뱉기지만.


 영화의 등급을 낮추려고, 혹은 다른 이유로 삭제해 개봉한 뒤 비난이 밀려올 때 정당한 이유랍시고 댈 건 수도 없이 많다.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 그러므로 잉여 작품을 쳐내야 하는 장인 정신으로 수입한 영화를 삭제해 개봉하는 소름 끼치는 행위가 사라질 리도 없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헐리우드의 와인슈타인처럼 거대한 회사도 그런 짓을 한다.) 차라리 수입사가 자체적으로 편집해 개봉하는 영화의 경우 포스터나 광고 배너 등에 '수입사가 자체적으로 편집했음' 식의 경고 문구를 넣도록 정부 차원에서 조치를 하는 건 어떨까? 저 '악랄한 사채업체'의 광고나 '폐암을 유발할 수 있는 담배'의 포장처럼 반드시 경고 문구를 넣도록 말이다. 아. 이번 비유는 너무 완벽했어. 많이 칭찬해. 사채업자와 담배라니!


 참고로 구글 검색에 wind river korea란 자동 완성이 뜬다. 부디 다른 이유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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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베리알 2017.09.23 12:23 신고

    이거슨 이거슨 요즘 영화팬들 사이에 화제인 그... 영화로군요.
    여기에다가 일부 평론가들까지 발을 담가 난리던데...

    암튼 뭐 그냥 웃음만 나오는군요. 아주 찐한 비웃음...
    21세기가 된지도 20년이 지나가는데 하...

    • BlogIcon 즈라더 2017.09.24 00:30 신고

      충격과 공포에 미친 워딩을 써서 신명 나게 까는 글이었는데, 괜히 어그로 끌고 되려 제가 욕 먹을까봐 좀 자제했습니다. 허허.

      <킬러의 보디가드> 같은 경우야 청소년에게도 먹힐 만한 영화니 그렇다 치자구요. <윈드 리버>를 청소년이 봐봤자 얼마나 본다고...-_-;;

  2. 분노 2017.09.24 08:17 신고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이 공감되네요. 뒤늦게 편집본을 봤다는거를 알게되었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네요. 지금 시대가 어느때인데 수입사에서 사전검열을 하고있습니까.

    • BlogIcon 즈라더 2017.09.26 23:25 신고

      사실, 뜻밖에도 지금 시대가 된 뒤에도 사전 검열질은 계속되어왔습니다. <콜롬비아나>처럼 황당한 경우도 있었고요. 안습합니다.

  3. Clevvsky 2017.09.27 03:53 신고

    확실히 강간 장면이 영화에 그대로 포힘됐다면 꽤 불쾌했을 겁니다. 왜냐면 "그러라고" 넣은 장면일테니까요.
    피해자가 그 추운 눈밭을 뛰어 도망쳐야 했던 이유를 각인시켜주고 더 그녀에게 감정이입돼서 볼 수 있었을텐데...
    결론적으로 우리 한국 관객들은 마지막에 제인이 흐느낄 때 같이 흐느낄 수가 없었죠. 감정을 이입할 수가 없는 반쪽짜리 영화를 봤으니...

    부디 "불편"하신 분들은 어디 조용한 곳에 모여 자극적이지 않은 미음이나 먹다가 조용히 사라지기를...

    • BlogIcon 즈라더 2017.09.27 22:15 신고

      그냥 아무 의미도 없이 야동이나 스너프 필름처럼 느끼라고 넣은 장면인 줄 아는 병신들이 너무 많아요.

    • 거북이 2017.10.16 22:50 신고

      맞아요..
      영화보는 내내 뭔가 잘려나간 느낌과 평론가들한테 속았다는 기분으로 보다가 게다가 마지막에 제인이 왜 우는지 정말 공감하기 어려웠어요.
      수사과정에서도 뜬금포가 많았지만 뭐 이건 원래 시나리오겠지요..

  4. 황당하네요 2017.09.28 21:48 신고

    황당해서 말이 안나오네요 왜 초반에 맨발로 설원을 피투성이가 되서 뛰는지 이유가 궁금했는데 중요한걸 통으로 날린거네요 ....감독판 이나 다시 봐야겟어요 사전검열 이라니 지금이 어느때인데 구글에 검색 된다니 얼굴이 붉어지네요

    • BlogIcon 즈라더 2017.09.28 23:48 신고

      불편함을 느끼게 해서 감정적 변화를 주려고 한 장면을 잘라놓곤 지가 잘하기라도 한 것마냥 인터뷰를 하다니.. 참 기가 차죠.

  5. 너무하구먼 2017.10.12 17:57 신고

    딴거없는대 개봉한번더할라구 그런거임 20초의 사라진장면때문에 또보는 얼간이가 없기를

  6. 궁금자 2017.10.18 17:42 신고

    제가 기사에서 본 바로는 수입판이 111분/감독판이 107분이라고 알고있는데요 15세관람가 등급이 영화제에 출품했던 111분짜리이고 감독판이 북미개봉판인 107분짜리인데 지금 올리신 글이 사실을 토대로 작성하신게 맞는지요?

    • BlogIcon 즈라더 2017.10.18 19:45 신고

      감독판이나 확장판 같은 게 존재한다면 imdb에 등록이 됩니다. 그러나 107분 말고는 등록된 게 없어요. 111분은 한국만의 버전인 셈이랄까요.

  7. 궁금자 2017.10.19 22:35 신고

    답글이 안달려서 다시 글 남깁니다 imdb에 킹덤오브헤븐 감독판도 없고 로빈후드 감독판도 없는데요...제가 볼땐 글쓰신분이 실수하신둣 한데요...;;저도 어렸을때부터 등급을 위해서 마음대로 편집한(특히 비디오)영화들 참 저주하고 편집크레딧에 지들 이름도 넣어야 되는거 아닌가 하며 이 말도 안되는 농간을 비판하면서 살아왔는데 윈드리버는 번지수가 잘못된듯 한데요...정확하게 다시 확인해보심이...

    • BlogIcon 즈라더 2017.10.19 22:51 신고

      킹덤 오브 헤븐 감독판도 있고 로빈 후드 확장판, 감독판 다 있습니다.

      이미 인터뷰로 본인 스스로가 다 까발린 걸 번지수를 잘못되었다고 하시는 게 좀 이상하네요. 저 인터뷰를 제가 만든 것도 아니고 본인이 직접 말한 거니까요.

      그리고 잘 생각해보니 영화제 판본이라는 것도 황당하군요. 영화제에 출품된 가편집 상태의 미완성본을 수입해와서 강간 장면을 비롯한 일부 컷을 삭제하고 개봉한 꼴이 되는 걸요?

  8. 거북이 2017.10.20 14:43 신고

    제작사가 와인스타인이면 요새 시끄러운 그! 와인스타인이군요!
    영화에 하는 짓도 다르지않네요.

  9. 궁금자 2017.10.21 00:44 신고

    정리가 됐습니다ㅎㅎ 답글달기가 안돼서 또 글로 남깁니다 제가 말씀드린데로 이영화는 두가지 버전이 있습니다(예전 놈놈놈같이-놈놈놈은 칸버젼과 국내개봉버젼이 있었죠) 하나는 영화제등에 출품된 111분짜리이고 하나는 감독판이라고 하는 미국개봉판107분 짜리 입니다 하지만 글쓰신분의 글도 일부는 맞는게 최초개봉시 등급을 낮추기 위해 111분짜리 버젼을 40초가량 자체삭제하고 개봉했습니다(감독에게 허락을 받았던 안받았던 억장이 무너지죠) 그리고 다시 107분짜리 미국개봉판을 감독판으로 개봉시킨거네요 아무튼 글쓰신분의 분노와 방향은 맞지만 감독판자체가 넌센스는 아니였습니다 두가지버젼이 존재한거고 우리나라 수입사덕분에 우리나라관객은 세가지버젼을 볼수가 있겠네요ㅋ 아무튼 돈 좀 더 벌기위해 가위질을 한다는데 참 후진국마인드인데 왜이러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