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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들리 스콧의 변화는 마이클 만과 조금 닮아 있다. 이미 존재하는 영화 속 세계에 감상자를 던져놓는 방식으로 진화한 게 그렇다. 마이클 만의 연출 철학이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극에 도달한 것처럼 리들리 스콧은 바로 이 <카운슬러>로 극에 도달했다할 만하다. 다만 리들리 스콧의 연출은 '던져놓는다'는 점 외엔 다른 방향을 바라본다.


 영화 세계에 감상자를 던져놓고 대사조차 거의 없이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인 마이클 만과 다르게 리들리 스콧은 철학을 동원해서 인과를 설명한다. 인물의 내적 변화나 처해 있는 상황마저도 직접,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철학 문답과 배우들의 연기에 모든 걸 맡기는 쪽. 시종일관 언급되는 '여성'과 '섹슈얼리즘'이 <카운슬러>의 줄기고, 그 정체성이 발현하는 곳이 멕시코 카르텔인데, 그 어느 선택보다도 더 확실하게 돌이킬 수 없는 그곳에서 인과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 하고 도망치는 카운슬러의 모습이 <카운슬러>의 전부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들은 전반부 1시간에 가깝도록 이어지는 인물간의 대화에서 전부 서술된다. 따라서 전반부 1시간은 후반부 1시간을 위한 장대한 예고편(?)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카운슬러>를 화려한 실험작이자, 이후 리들리 스콧의 필모그래피를 결정지어버린 걸작이라 여기고 있다. 상기한 바와 같이 상당수의 영화가 그런 것처럼 가타부타 단순하게 설명을 하느라 손발 오그라트리는 일 없이, 이미 구성된 세계에 등장인물들을 던져놓고 평범한 대사에 철학을 가미해서 그 세계를 탐닉할 수 있게 구성했다. 심지어 카르텔이라는 실재하는 끝판왕급 범죄 조직까지 끌어와 현란하게 이용해먹었다. 아마 이런 연출로 꾸며진 마약 범죄 영화 혹은 복수극은 전대미문일 거고 전무후무한 완성도일 거라 본다. 다시 맛 볼 수 없는 특수한 음식인 셈이다.


 참고로 <카운슬러>는 <시카리오>의 선배격인 영화기도 하다. '절대적 존재'로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카르텔은 복수의 도구이면서 절망의 현신으로, <카운슬러>를 어처구니 없으리 만큼 음울하고 섬뜩한 영화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카운슬러>는 되도록이면 3년 정도 텀을 두고 재감상하도록 하자. 멘탈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영화라 자주 보면 정신건강에 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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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베리알 2017.12.08 10:38 신고

    마이클 만 영화라니까, 저러고 앉아 있다가
    바로 뛰쳐 나가 총질을 해야 할 것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 ^^

  2. Evariste 2018.03.16 17:47 신고

    프로메테우스,카운슬러,엑소더스 부터 리들리 스콧 감독님은 철학적 담론을 견고하게 세우기 위해서 대사,소품이나 미장센 같은 영화적 요소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대중적인 매끄러운 서사전개를 안하는 느낌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공감합니다.

    • BlogIcon 즈라더 2018.03.18 21:51 신고

      그 밸런스를 잘 맞춰야 대중적으로도 성공하는 건데,
      원래 그거 잘 하던 분이니... 약간 더 철학쪽으로 치우쳤는데도
      그럭저럭 흥행해내고 있지요.

      오래오래 건강히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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