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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와 <배트맨 대 슈퍼맨>이 같은 시기에 개봉한 건 참 신기한 일이다. 두 영화 모두 특별한 능력을 지니지 않은 이가 계략으로 히어로들을 갈라놓았고, 그 도구 중 정의로 포장된 복수심이었다. 극단적인 컬트화로 유명한 <배트맨 대 슈퍼맨>과 다르게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는 대중과 평론 양쪽에서 호평을 이끌어냈으니 온전히 같다고 하긴 어렵겠지만, 비슷한 소재로 다른 스타일을 추구한 두 작품의 개성 덕분에 몹시 행복했던 2016년이었다. 올해엔 <저스티스 리그>와 <토르: 라그나로크>가 당시의 행복을 재현해주길 간절히 빌었으나 두 작품 모두 내 취향에 꼭 맞아떨어지진 않아서 아쉬울 따름. 사실, 지금까지의 꺼낸 이야기는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를 다섯 번째 감상하고 난 지금의 이야기가 아니라 몇개월 전부터 생각해왔던 것들이다. 지금 떠오르는 건 뜻밖에도 영화 외적인 부분이다.


잭 스나이더가 찍은 장면과 현재 개봉한 영화 속 장면은 색감이나 연출기법뿐 아니라 아예 전쟁 컨셉마저도 다르다.


 워너 브라더스의 과감한 병신짓 덕분에 이래저래 말이 많은 <저스티스 리그>를 보고 있노라니 같은 실수를 하다가 중요한 순간에 차단해, 정도를 걷고 있는 마블이 정말 고맙게 느껴진다. 본래 마블도 지금 DC랑 비슷한 꼴이 될 뻔 했었는데, 디즈니가 아이작 펄머터의 간섭을 차단하고 케빈 파이기에게 전권을 주면서 기사회생했다. <아이언맨2>와 <토르: 천둥의 신>, <토르: 다크 월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상당히 심각한 혹평을 듣는 등 마블 역시 작품의 질이 들쑥날쑥 했는데, 아이작 펄머터의 간섭이 사라지는 순간부터 일관되게 좋은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따져보자. <배트맨 대 슈퍼맨>은 기대 만큼은 아니어도 흥행에 성공했고, 감독판으로 완전히 컬트화되어 '이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 같은 오글거리는 제목의 리뷰 영상까지 올라오는 등, 격렬하다 싶을 정도의 사랑을 받는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뜻밖에도 가벼운 소재의 아이들과 함께 보기 좋은(...) 영화로 인식되어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원더우먼>은 잘 알려진 대로 평론과 흥행을 모두 잡은 케이스. 즉, 딱히 누군가를 자르느니 마느니 할 만한 성적을 거둔 작품이 없었다. 무턱대고 잭 스나이더를 자르고 제프 존스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식의 사기 떨어지는 소리를 지껄인 워너 브라더스의 조급증이 <저스티스 리그> 사태를 만들어낸 것이다. MCU 팬들에겐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아이작 펄머터가 쓰레기였던 것처럼 DCFU 팬들에겐 워너 브라더스란 회사 자체가 쓰레기.




 멀리 내다 보고 당분간은 지켜볼 생각조차 안 하는 워너 브라더스를 보면 히딩크 감독을 당장 쫓아내야 한다고 온 힘을 다해 욕을 퍼붓던 이들이 떠오른다. 결국, 워너 브라더스는 그놈의 조급증을 참지 못 하고 잭 스나이더와 스타일이 아주 다른 조스 웨던을 데려다 <저스티스 리그>를 완전히 뒤엎었고, 그 결과 <저스티스 리그>는 잭 스나이더의 팬, 조스 웨던의 팬, 일반 대중까지 모두에게 버림 받으며 끔찍한 실패를 거두고 있다. 그래놓고 모든 책임을 잭 스나이더에게 미루려고 '원래 자르려고 했었다'는 식의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다. 안 그래도 조스 웨던이 삭제하고 변경한 장면들 목록이 올라오고 나서 잭 스나이더의 감독판 청원이 상당한 기세를 타고 있었는데, 잭 스나이더에게 모든 책임을 미루려는 워너를 보고 어이없어하는 이들 때문에 청원 숫자가 더 늘어나 청원자가 15만 명을 돌파했다. 지금까지 사실로 알려진 것만 봐도 지금 개봉한 <저스티스 리그>는 잭 스나이더의 영화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겨우 20세에 불과한 수양딸의 자살이 준 충격에 <저스티스 리그>를 완성시키지 못 하고 하차해야 했던 잭 스나이더는 자신의 영화라 부를 수 없을 만큼 많이 바뀐 <저스티스 리그> 때문에 융단 폭격을 받고 있는데, 그걸 커버해줄 생각은 안 하고 적반하장격으로 잭 스나이더에게 모든 책임을 미루려고 하는 워너 브라더스. 잭 스나이더가 만들어둔 것을 뒤엎고 영화의 정체성을 불분명하게 한 건 (조스 웨던이 아닌) 워너 브라더스임을 세상 사람이 다 아는 마당에 그런 기만작전에 나선 것이다. 기본적 예의나 윤리조차 잊어버린 이 기업의 영화를 계속 봐줘야 할까? 그냥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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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베리알 2017.12.09 10:08 신고

    어디서 어떻게 풀어야할지 모르는 혼돈의 도가니탕...
    이러니 DC는 아예 리붓하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데...
    지금처럼 워너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한 아무리 리붓해 봐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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