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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레거시>가 거둔 수확은 아주 큰 의미가 있다. 등장인물의 9할을 기능적으로만 활용하며, 'AI 로보트의 집합'이 아닌가 싶었던 기존 본 트릴로지와 다르게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스쳐 지나가는 이들마저 자신이 '사람'임을 강조한다. 토니 길로이 감독은 영화 초반부에 아주 격정적인 성격의 애런 크로스를 데려다 본 트릴로지의 트레드스톤 요원처럼 구는 다른 아웃컴 요원을 인간으로 '교화'해버린다. 내가 <본 레거시>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런 식으로 등장인물을 하나씩 인간으로 만들어갔기 때문이다.


 본 트릴로지의 극단적이리 만큼 완벽했던 제이슨 본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설명하려 했다. 제이슨 본과 트레드스톤 요원들은 이미 시리즈에서 다뤄졌기 때문에 건드릴 수 없었지만, 제이슨 본 세대 이후의 블랙 브라이어와 아웃컴 요원들은 냉철한 판단력과 인지 능력, 강력한 신체 능력을 위해서 최첨단 생화학 실험을 통해 약품을 투여 받아 활동한다는 설정이 추가되었다. 이 부분이 유치하다는 지적을 보곤 하는데, 잘 생각해보면 오히려 현실성을 위한 선택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총을 맞고 다리에 금이 가고 엄청난 교통 사고를 당하고도 절룩거리며 할 거 다 하는 제이슨 본의 캡틴 아메리카가 스승으로 삼아야 할 법한 압도적인 방어력을 애런 크로스에게도 줄 생각이 없었던 셈이다. <본 레거시>에서 애런 크로스는 어깨 끝에 총알이 스치고 다리에 총을 맞는 것만으로 기절하는 등 상당히 고생을 했다.



 <본 레거시>는 액션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다. 총격씬의 총격음은 기존 시리즈에선 상상도 못 한 현장감을 선사한다. 셰링 박사의 집 시퀀스는 셰링과 요원들의 살벌한 신경전으로 시작해 반전을 거쳐 애런 크로스의 난입이란 결론까지 다양한 방식의 스릴을 제공한다. 이 또한 토니 길로이의 장기. 그가 해낼 수 있는 최고의 액션씬이라 할 만하다. 클라이막스인 오토바이 체이싱 장면이 토니 길로이보다는 댄 브래들리의 영향력이 더 큰 장면이었으니 (댄 브래들리는 일부 컷의 스토리보드와 촬영에도 참여했을 만큼 해당 오토바이 체이싱 시퀀스의 상당 부분을 도맡아 처리했다.) 토니 길로이의 실력이 온전하게 백분 발휘된 순간은 셰링 박사의 집 시퀀스라 하겠다.


 <마이클 클레이튼>에서 그랬던 것처럼 토니 길로이는 자연의 무언가(본작에선 설산과 늑대)로 영화의 주제를 설명하려 하거나 주인공의 내면을 비추려했다. 그리고 그 '자연적 존재'는 주인공의 목숨을 구하는 결정적 역할을 맡기도 한다. 이런 그만의 연출 철학은 영화를 우아하게 만들고, 영화 속에 '모호함'의 영역을 구축해내어 되새김질을 유도한다. 그래서 <본 레거시>는 여러 차례 감상해도 재미있다.


 <본 레거시>의 결말은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거울에 적혀 있는 'NO MORE'을 한국어 자막으론 '더 이상 쫓지 마'라고 의역했지만, 실제론 쫓지 말라는 의미보단 제이슨 본이 그랬던 것처럼 '더 이상 너희들이 하라는 대로 하지 않을 거야'라는 선언에 가깝다. 또한, 블랙 브라이어를 세상에 까발린 뒤 제이슨 본 대신 국가와 사투를 벌이던 파멜라 랜디는 완전히 사회적 매장 위기에 처하지만, CIA의 비리를 고발한 걸 후회하느냐는 질문에 "많은 것을 후회하지만, 그것 만큼은 아닙니다"라는 명대사를 뿜어낸다. CIA뿐 아니라 펜타곤까지 합류해 요원들을 학살하고 파멜라 랜디를 깔아뭉갰지만, 애런 크로스는 살아남았고, 파멜라 랜디는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교차편집으로 엮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다.


 내 생각에 이 시리즈가 완벽하게 부활하려면 애런 크로스, 파멜라 랜디, 마르타 셰런, 에릭 바이어가 토니 길로이와 함께 복귀해야 한다. <본 레거시>를 최소 6번 이상 본 듯한데, 볼 때마다 이토록 즐거운 이유는 토니 길로이가 확장시켜놓은 세계관과 재설정된 컨셉 등이 아주 신선해서다. 그 신선함의 주역들을 <제이슨 본>의 속편에 투입한다면 아주 흥미진진한 아이디어가 탄생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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