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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 팬서>는 혼종이다. 세상 모든 흑인의 입장을 대변하기라도 하려는 듯 아프리카, 아메리카에 펼쳐졌던 흑인 사회의 비극을 스쳐지나가듯 언급하고 '자유'를 외친다. 각지에서 펼쳐졌던 흑인의 비극이 편견이나 차별이란 표현으로 손쉽게 정리할 수 없음에도 그렇게 해버렸고, 그래서 <블랙 팬서>의 정치적 담론은 처참할 정도로 얕다. 헐리우드의 히어로 영화에 뭘 더 바라느냐고 물을 수 있는데, 당장에 같은 히어로 영화인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와 비교해도 한숨 나올 만큼 차이가 난다. 대놓고 '흑인이 당한 만큼 돌려주자'는 식의 빌런을 내세운 영화가 완전체에 가까운 정치적 논리의 스티브 로저스를 내세운 영화보다 못 하다는 건 분명히 문제가 있는 거다.


 영화의 구조마저도 혼종이다. 아메리카 흑인의 힙함에 아프리카 흑인의 전통이 뒤섞인 말투, OST, 와칸다인의 풍습 등은 처음엔 신기할 수 있어도 후반으로 갈수록 지치고 어색하다. 많은 이가 지적한 것과 다르게 <블랙 팬서>의 내러티브에 큰 문제를 발견하기 어려웠지만, 이야기의 흐름과 감정 변화가 극단적으로 빨라서 설정된 '이유'를 느낄 틈이 없다. 완급 조절 실패.


 고전 소설이나 역사, 헐리우드 에픽 등에서 자주 다뤘던 이야기와 아프리카 전통과 뒤섞어서 만들어낸 '컨셉'을 클라이막스까지 유지한 것도 문제다. 토르 시리즈가 <토르 라그나로크>가 나오기 전까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가장 인기가 없었던 이유를 기억하지 못 하는 모양이다. 와칸다가 세계 최강의 기술력을 지녔으면 뭘 하겠는가. 컨셉 때문에 그 기술력을 발휘한 멋진 전투 장면 하나가 안 나오는데. 아니. 컨셉을 유지하면서 와칸다의 기술력까지 발휘할 방법을 찾아낼 능력이 없었거나 시간이 없었을 가능성에 더 비중을 두고 싶다. 사실, DC 만큼은 아니어도 마블 역시 영화를 굉장히 촉박하게 기획하고 있으니까.


 <블랙 팬서>는 다른 마블 히어로의 첫 번째 영화화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온갖 시행착오를 다 저질렀는데,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PC 요소를 억지로 집어넣은 끔찍한 혼종이다. 앞으로 <블랙 팬서>보다 더 한심한 마블 영화는 없어야 한다고 주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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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베리알 2018.05.27 10:06 신고

    얼마전 어디선가 이런 글을 봤던 게 떠오르는군요.
    블랙팬서를 씹는(?) 이야기들을 하던 중인데,
    어느 어르신의 말씀이... 요즘 초딩들에게서 그넘의 앙기X띠 몰아내고
    와칸다포에버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블랙팬서는 명작이다!...라는 야그를!! 설득력갑이더군요. ^^;;;

    • BlogIcon 즈라더 2018.05.30 15:36 신고

      오호라? 와칸다 포에버가 그런 대상이 된 모양이군요.
      전 미국 쪽에서만 그런 반응이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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