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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로사와 키요시는 자극 가득한 워킹과 빠른 편집이 아닌, 점진하며 스멀스멀 뒷골에 기어오르는 듯한 공포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특유의 느긋한 감성 덕분에 싫어하는 사람은 아주 싫어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아주 좋아하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감독인데, 여기에 영화 전체를 모호함으로 도배하는 작가주의 속성까지 가지고 있다. 그를 질색하며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 쿠로사와 키요시가 SF 재난영화를 만들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이미 <크리피>로 어떤 장르에서건 자신의 작가주의를 관철한다는 걸 재확인케 한 쿠로사와 키요시니 만큼 <산책하는 침략자>도 똑같이 갈 거라 확신했고, 그 확신에 보답이라도 하듯 이 영화는 쿠로사와 키요시만의 색채가 가득하다. 영화 전체에 만연한 모호함은 '모호'에 살고 '모호'에 죽는 한국의 모 감독조차 한 수 접어둬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지경. 등장인물들이 순간의 감으로 행동할 때조차 설명충 빙의를 거부하는 그의 강단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가 자신만의 연출 철학을 관철했다고 해서 변화가 감지되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대격변 수준의 변화가 있었다. 진심으로 변화를 꾀한 건지 아니면 다른 외적인 이유에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놀랍게도 광범위적 사랑을 다룬 이야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쿠로사와 키요시가 이 세상의 모든 즐거움은 사랑이란 감정에서 비롯되며, 사랑이야말로 감정 그 자체라고 울부짖는다. <크리피>로 개인의 생존본능을 제외한 모든 감정은 가짜, 전부 간단히 없애버릴 수 있다고 비아냥대던 그 쿠로사와 키요시가 무려 사랑을 노래하고 찬양한단 말이다. 이게 믿겨지는가?


 영화에서 놀랄 요소는 하나 더 있다. 바로 나가사와 마사미의 연기력이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로 각종 영화제 여우조연상을 휩쓸고 다니던 그녀가 꾸준히 작은 영화 큰 영화 가리지 않고 출연하더니 이제 연기의 정점에 이르른 모양이다. <산책하는 침략자>에서 그녀는 깜짝 놀랄 정도로 다채로운 표정을 보여주며 비로소 '연기파 배우'란 수식어를 당당히 내세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장면, 컷 하나하나에 장인 정신이 담긴 연기를 담아두었다.


 이하 스크린샷은 <산책하는 침략자> 일본판 블루레이의 원본 사이즈 캡쳐. 화질에 크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나, 영상이 전반적으로 어둡다. 의도한 건지 마스터링의 실수인건지는 미지수. 그러나 2시간 짜리 디지털 촬영 본편을 40기가 넘게 때려박는 무지막지함은 과연 일본판 블루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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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베리알 2018.07.19 09:27 신고

    헨타이옹의 말씀과 스샷들을 보니 호기심이 동하는 영화로군요.
    뭔가 색이 바랜듯 무미건조한 느낌도 드는 색감도 그렇고... ^^

  2. BlogIcon 홍준호 2018.07.19 20:50 신고

    색감 같은 걸 보면 <회로>나 <큐어> 떠올라서 기요시답다는 생각이 드는데, 한국 개봉 포스터는 코미디 같더군요. 영상은 저렇지만 코미디인지 궁금해지기도 하네요.

    • BlogIcon 즈라더 2018.07.21 16:16 신고

      한국판 포스터 보니까 영화의 분위기와는 굉장히 상반되지만
      핵심은 짚었네요...ㅋㅋㅋㅋ 이건 뭐 대놓고 스포도 아니고..

      어처구니 없어서 실소가 나오는 코미디는
      조금 있습니다만, 이전 작품처럼 빈번히 나오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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